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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 없는 내 집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설거지를 하다가 언제 깨졌는지도 모를 유리반찬통에 슥- 베였다. 베이는 느낌을 정확히 알아차릴 정도여서 상처의 길이도 깊이도 눈으로 확인되었다. 피가 제법 나길래 밴드를 찾았는데, 제대로 된 밴드가 없었다. 급한대로 찾은 것이 화려한 공룡메카드 밴드. 쯧쯧쯧. 내 것이 없는 우리 집이라니. 일반 밴드 조차 갖춰지지 않은 집이라니... 부지런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진다. 얼마 전 일이다. 간단한 장을 보러 가기 위해 외출 후 남편과 함께 마트로 이동하던 중, 내가 물었다. "집에 마늘 있어?" "있을껄? 아니다. 있다. 그런데, 이건 내가 물어야 될 질문 아냐?" "누가 묻는가가 여기서 왜 중요해?" "아니... 내가 알고 있고 당신은 모르고 있는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

오직사유 2021.04.04

내가 진심으로 대하는 음식

오늘 꽃놀이를 한 이후에 알았다. 참, 나란 여자는 어쩜 '꽃'에 이리도 감흥이 없을까. 함께 봤던 언니들이 더 좋았고, 민희와 연우, 경원씨가 더 반가웠다. 아직 덜 큰 걸까. 자연이, 꽃들이, 나무들이 좋아질(딱히 싫은 건 아닌데) 나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산을 내려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하교하는 시운이를 맞이했다. 학교를 좋아하는 시운이가 참 다행이었다. 도서관에 데려다 주고 샌드위치로 허기가 졌었는지, 근처에 있는 초밥 집이 생각이 났다. 칠암동에 있던 '우미초밥'이 초전동으로 자리를 옮긴지 2년쯤 됐나? 회를 사랑하는 내가 인정한, 진주에서는 제법 괜찮은 초밥집이다. 꽃뿐만이 아니라 나는 '음식'에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늘 맛있는 음식 한 번 찾기가 어려운 입맛. 입맛이 ..

지피지기 2021.04.01

화려했던 시민기자 데뷔기, 오름에 오른 것이 화근이었다

매일 한 편씩 글쓰기. 휴직하는 기간 동안 세 아이와 씨름하는 일상 속에서 만든 나와의 약속이었다. 글감이 마구 떠오를 땐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써 내려가기도 했지만, 요즘은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마음잡기가 어려워 컴퓨터 앞에 앉는 것조차 힘든 것이 고민이랄까. 누구나 심경에도 굴곡이 있을 수 있다지만,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곧 내가 미워지는 상황으로까지 번지니 괴로웠다. 괴로움이 길어지면서 괜히 아이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을 하지. 찬찬히 내 안의 이유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초보 작가들이 모여 소소한 글을 쓰고, 그 글들을 한 편씩 메일로 발송하는 메일링 서비스에 참여하고 있다. 글쓰기가 진심인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라 그런가? 가끔씩 가지는 온라인 회의와..

오직사유 2021.03.29

생각하는 밤

주말이라 간만에 알람설정을 하지 않고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이 떠지겠지? 호언장담하고 일어났는데 웬걸. 12시간이나 잤다. 눈을 떠보니 막내는 바디로션을 온 바닥에 칠갑을 하고 있고, 둘째는 공룡 색칠하기 도안을 인쇄해 달라 보채지 않나, 첫째는 그런 동생들을 눈만 뜨고 꿈뻑꿈뻑 보고있더라. 주말 아침이라 참 다행인 풍경이었다. 바쁘다 바뻐. 나는 주말이 더 바쁘다. 세 아이가 북적이는 집안은 그야말로 난장판. 영혼의 반쯤은 덜어내놔야 행동의 반경과 이성적인 판단이 온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효! 시간아 어서어서 흘러라~~~ 정신없이 보내고 밤 11시가 되서야 아이들이 다 잠이 들었다. 얼마나 이 시간을 기다렸나. '놀다 자야지!' 마음먹고 안방을 뛰쳐나왔다. 드라마 한 편을 틀어놓고 생각없이 손만 ..

오직사유 2021.03.28

이 남자의 관심

'이사'. 사실 막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나오던 우리집의 화제였다. 그러니까 내가 MBC 구성작가로 바닥을 치고 있을 때도 그랬고, 그만두고 한 달 정도 쉬고 있을 때도, 창원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을 때도 늘 저녁 식사 자리에 앉으면 남편이 꺼내던 말, 첫머리에 있었다. 당분간 일을 쉬기로 한 올해 2월엔 진짜 실행에 옮길 기세였고, 막내의 키가 커지면 커질수록, 5명이 지그재그로 잠이 드는 패밀리 침대 위를 떠올릴 때마다 절실함을 깨달아왔다. "집 보러 갈래?" 이 한마디로 시작된 것이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집을 팔고, 새 집을 구하게 되고, 우리는 인테리어 할 곳들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인테리어 지옥'에 빠져 버렸다. 51평 복층. 사실 이 집도 우리한텐 좁디 좁은 공간이다. (다른..

오직사유 2021.03.26

저는 전직 라디오 리포터였습니다

TV 아니고 라디오. 소리가 있는 곳이면, 이야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마이크 앞부분을 쓱- 갖다대고 숨죽이며 현장을 담던, 나는 전직 라디오 리포터였다. 똑같은 현장이어도 영상에 담는 것보다 숨은 내용까지 전달할 수 있어서 매력적이었던, 영상은 담을 수 없는 구석구석까지 찾아 누비던 시절. 적극적이고 친화적인 성격이 주 무기가 돼 딱히 섭외를 하지 않아도 웃으면서 다가가면 큰 외면없이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가능했던 그 날들. 갑자기 지난 날을 돌아보는데는 이유가 있다. 진주 KBS에서 전화가 왔다. 리포터가 급히 필요한데, 가능하겠냐-는 연락이었다. 여러 생각이 오갔지만, 오후 5시 방송이란 말에 깔끔하게 접어야했다. 6시에 마치면 아이들 하교, 하원에다 저녁시간이 촉박하기 때문. ..

지피지기 2021.03.25

내 머리에 봄바람이 불었다

그 어느 미용실에 가도, '머리 숱이 정말 많으시네요' 라는 말이 직원의 푸념으로 들릴 정도였다. '이 많은 머리를 언제 다 마나...'의 의미였을거다. 게다가 반곱슬인터라 매직과 컬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번 가면 기본 15만원씩은 투자를 해야 봐줄만한 스타일이 나오는, 돈이 참 많이 들어가는 머리... 이번엔 과감하게 싹뚝. 숏컷을 감행했다. 수십만원 돈을 들여도 내 머리스타일은 늘 뒷전이었다. 이번에도 '오랜만이네요' 라고 말하는 본부장 앞에서 꺼낸 첫마디가 "또, 엉망으로 만들어왔어요!". 늘, 방치하는 머리. 질끈 묶거나 올림머리가 전부였던 긴 머리가 그렇게 거추장스러울수가 없었고, 숱이 많다는 장점은 조금만 길어도 목을 뻐근하게 만드는 무게라는 단점으로 변해 늘 마무리는 좋지 않았다. ..

오직사유 2021.03.19

작가가 되는 길

글쎄. 작가가 되는 길엔 어떤 과정이 필요한걸까? 사실은 나도 모른다. 내가 국어국문과나 창작 문예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구성작가 아카데미를 다녔던 것도 아니며, 작가 수업을 따로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책'이란 걸 가까이 한지도 얼마 안되었다.) 작가라는 타이틀도 아직 낯선데, 내가 작가 되는 길을 어떻게 알겠나. 그런데, 작가라는 명함을 달고 보낸 지난 3년 간의 시간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넘어지고 엎어져 무릎에서 피가 철철 나고 거의 매일 밤을 엉엉 울었다고 비유해도 과하지 않다는 거. 아이템 선정, 자료 수집과 같은 작업만 주구장창 했던 시간들을 보내면서 글 쓰기 전 기초작업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았고, 또 어떤 문장들로 원고를 완성해야 하는지 밤새 머리를 ..

작가세계 2021.03.17

평범한 결혼생활

기다리던 책이 왔다. 원래라면 11일 진주문고를 달려가 샀어야 했지만, 진주 목욕탕 발 코로나가 심각해지는 바람에 온라인으로 주문해 받았다. 결혼 20주년을 맞아 남편에게 선물하기로 마음을 먹고 쓴 임경선 작가의 에세이 책. 도착한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되서 빵빵 터지는 웃음에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했다. 재밌다. 흔하디 흔한 결혼 생활 이야기가 아니라서 좋다. 임경선 작가는 언젠가 한 신문사 지면에서 처음 발견한 이름이다. 연애상담 코너의 상담내용으로 내 시선을 끌었다. (20대 중반이었으니, 한참 그 분야에 관심이 많을 때였다) 세상에. 이렇게 쿨한 생각을 가진 여성이 있다고? 상세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시원시원하고 통쾌한 내용으로 상담을 이끌어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런..

오직사유 2021.03.14

새벽기상과 커피 한 잔이 하루에 미치는 영향

1월 어느 날 느닷없이 시작된 나의 새벽기상이 2달을 채워가는 중이다. 몰랐는데, 챌린저스(언젠가 승훈샘이 얘기해준 적이 있다)라는 어플을 사용하면 상금도 준다는 얘기에 이왕 일찍일어나는 거 한 번 이용해 볼까?! 해서 2주치 도전 했는데 상금이 1800원 ㅋㅋㅋㅋㅋㅋ (만원이 아니라 더 큰 금액을 걸면 상금도 많아지는 건가?!.....) 나름 쏠쏠해서 기분좋게 마무리했던 기억이. 지금은 '책읽기' 참가 중인데, 하루에 책은 꾸준히 읽고 있으니, 이것도 거저먹기로 달성해 가는 중. 새벽 기상이 내 몸에 아직 완전히 자리 잡은 건 아니다. 더구나 최근엔 첫째 아이의 신학기 스트레스로 정신관리에 문제가 생겨 컨디션이 뒤죽박죽이 되다보니 여파가 있었다. 밤 9시에서 10시 사이에는 잠이 들어야 하는데, 10시..

지피지기 2021.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