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

내가 진심으로 대하는 음식

어진백작 2021. 4. 1. 06:57

우미초밥 물회

 

오늘 꽃놀이를 한 이후에 알았다. 참, 나란 여자는 어쩜 '꽃'에 이리도 감흥이 없을까. 함께 봤던 언니들이 더 좋았고, 민희와 연우, 경원씨가 더 반가웠다. 아직 덜 큰 걸까. 자연이, 꽃들이, 나무들이 좋아질(딱히 싫은 건 아닌데) 나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산을 내려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하교하는 시운이를 맞이했다. 학교를 좋아하는 시운이가 참 다행이었다. 도서관에 데려다 주고 샌드위치로 허기가 졌었는지, 근처에 있는 초밥 집이 생각이 났다. 칠암동에 있던 '우미초밥'이 초전동으로 자리를 옮긴지 2년쯤 됐나? 회를 사랑하는 내가 인정한, 진주에서는 제법 괜찮은 초밥집이다. 

 

꽃뿐만이 아니라 나는 '음식'에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늘 맛있는 음식 한 번 찾기가 어려운 입맛. 입맛이 까다로워서가 아니다. 어떤 음식이든 함께 먹는 사람들이 더 좋았고, 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을 뿐. 이렇게 음식 사진을 올려놓고, 이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니 지금도 참 낯설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회'와 '해산물'은 일찍이 접한 편이다. 어릴 적부터 곧잘 회를 잘 먹었고, 멍게 해삼은 꿀떡꿀떡 잘만 삼켰다. 초밥이란 음식을 처음 접했을 땐 거의 신세계였다. 밥과 같이 먹는 회는 금상첨화였다. 기억에 남는 초밥은 편입시험 치러 서울 갔을 때, 세종문화회관 뒷 골목에 있던 오래된 초밥 집. 할머니와 삼촌을 따라 갔기 때문에 이름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때 나는 혼자 18 접시나 먹었더랬다. 부산 해운대에 본점이 있는 '미스터 스시'는 초밥 대중화에 앞장 선 가게다. 본점보다 나은 집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남천동에 2호점, 해운대 바닷가 쪽에 생긴 3호점까지가 내가 아는 전부. 이후로도 얼마나 더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친정집 근처에서도 문을 열었었다. )  

 

초전동 '우미초밥'에 들어설 땐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기 때문이었다. 모듬 초밥 한 세트를 시켰다. '좋아하는 생선이 있으면 말씀하세요'는 사장님 단골 멘트. 무뚝뚝하게 생겼지만 생각보다 자상하시다. 근데 이번엔 '모자라면 더 말씀하세요' 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더 달라고 하면 더 주실수도 있나요?" 

 

혹시나 물었던 바보같은 질문(예의상 한 말이었을 수 있으므로)에 사장님은 의외의 대답을 하셨다. 

 

"혹시, 물회 좋아하세요?" 

"물회는 사랑이죠."

 

라고 해서 나온 물회가 저 물회다. 여름시즌으로 내놓는 새 메뉴인데 날씨가 빨리 더워질 것 같아서 만들어보는 중이라 하셨다. 우와. 이게 무슨 횡재?! 

 

"그냥 주신다고요?"

"그런 사람 드문데, 얼마나 회를 좋아하시면 혼자 오셨을까 싶어서요."

 

한 눈에 알아보셨다. 내가 회에 진심인 것을. 공짜라서 좋았던 게 아니라, '회'로 마음이 통했다는 것에 신났다. 광어, 연어, 전복들이 살짝 얼은 야채들과 최고의 조합을 만들었다. 내가 초밥을 15ps나 먹은 게 실화인가. 국물까지 싸그리 비워내는 걸 보고 사장님은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정식 메뉴로 내놓기 전이라 피드백을 원하실까 싶어서 최대한 상세히 말씀드렸고, 귀담아 들어주셨다. 기분좋게 가게를 나선 후 차에 올라탔는데, 물회가 얼마나 시원했었는지 햇볕에 세워둬 열기 가득한 차안이 기분좋게 따뜻했다. 

 

전에 한의원에서 체질 검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물'과는 내가 맞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당연히 '해산물'도 궁합이 맞이 않다고 했고, 수영보다는 등산을, 바다 보다는 산을 가까이 하는 게 좋다고 했다. 지금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회'이고, '초밥'이고, '부산'에서 태어나 '낚시'를 가장 좋아하는 '인천' 출신의 남자를 만나 살고 있는데 나와 맞지 않다니 ㅋㅋㅋ 그저 우스울 뿐.

 

암튼, 오랜만에 혼자 즐긴, 기분좋은 만찬이었다. 사장님 대박나세요. ^ ^ 

 

 

*절대 '광고성'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사장님이 물회를 공짜로 줘서 쓴 글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