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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시

작년 9월부터 회사 제작비 중 일부를 관리하고 있다. 영수증까지 챙겨둘 필요는 없지만, 지급 내역이나 명목 등을 기록해두는 일이다. 백단위가 넘어가는 제작비를 갖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얼마 전 팀장은 인턴 한 명이 쓸 컴퓨터 조립을 위해 부품들을 사 달라며 링크를 보내왔다. 습관적으로 배송지를 우리 집으로 하는 바람에 귀찮은 일이 발생했다. 부피도, 갯수도 많은 부품들을 다시 회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소 짜증스런 일이 일어났던 것. 진주에서 오후 3시 촬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팀장은 출근을 요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일(어제 기준) 촬영도 있으신데, 나머지는 촬영 후에 신피디 편으로 보내세요~ 하루 정도 늦어진다고 큰 일 나겠습니까' 라고 말해주면 좋았을 것을... 이래저래 상황을 설명한 ..

오직사유 2021.01.23

조용한 자장가

평소보다 몇배는 더 무겁게 내 어깨를 짓누르는 스트레스를 안고 퇴근하는 길. 한숨은 푹푹 쉬어지고 머리속은 복잡하고, 다시 수정은 해야할 것 같은데 어디가 문제인지 모르겠고... 팀장과 피디는 또 눈치싸움 중이고, 그 사이에서 나는 또 주인 잃은 강아지마냥 허공에다 답답함을 소리치는 초보 작가....따시. 요며칠 남편의 수고를 알기에, 시간이 빠듯했지만 오늘은 내가 아이들 하원을 하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배가 고픈 둘째는 슈퍼에서 과자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하고, 배가 무지 고프지만 밥이 먹고 싶은 첫째는 얼른 집으로 가자며 날카롭게 반응할텐데, 이상하게 오늘은 둘다 기분이 좋고 보채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은 채 즐겁게 차량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운전 중인 나에게 이노래 틀어달라 저노래 틀어달라 빨리..

육아전쟁 2021.01.12

정인아미안해

보고 싶지 않았다. 보지 않으려 애썼다. 눈과 귀를 다 막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충격의 강도가 예상됐고, 분노 조절이 힘들 것 같았지만 봐야했다. 내 작은 관심이 다른 작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딱 우리 집 막내 채운이만한 개월 수. 볼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웃으면 눈이 반달 모양이 돼서 울고 있던 사람도 웃게 만들만한 기가 막힌 미소. 정인이의 웃는 사진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저렇게 밝고 건강한 아이가... 왜 이리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됐는지, 그 이유들을 차근차근 집어가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정인이편'이었다. 첫째 아이가 있는 가정집에 둘째로 '입양'된 정인이는 떠들썩하게 입양파티를 했다. 두 목사의 아들 딸이기도 한 양부와 양모는 결혼..

오직사유 2021.01.10

착한 영향력

1월 1일. 내 행복을 위해 했던 제일 첫 번째 실천은 '김선호 팬클럽'에 가입한 거였다. 아니 그냥 드라마에 나오는 모습만 보면 될 것이지 무슨 팬클럽씩이나 가입을 해?!?! 라고 할 나이에 내가 그러고 있다ㅋㅋ 공유와 넬을 내려놓을 정도면 말 다했지 뭐. 흐뭇해져서 보기 시작한 '선호' 영상이었는데, 보면 볼 수록 이 녀석 매력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1박 2일 멤버로 활동한 지 1년이 넘었다. 카메라를 등지고 서질 않나 얼레벌레 동공지진으로 등장했던 그는 참... 맑고 순수하다. 겸손하고 예의가 바르면서 동료들을 챙기는데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사실 1박2일 시즌4 전 멤버가 그렇다.) 밝고 명랑하고 매너 좋고 따뜻하고 스윗하다. 이 모습들을 다 연기라고 한다면,..

오직사유 2021.01.08

충격적인 병명

일주일 전 예약해뒀던 대학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다. 코로나19 확진자 소식이 연일 8명, 5명, 3명 끊이질 않는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대학병원으로 가는 발길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KF94 마스크를 착용했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과의 접촉도 왠만하면 피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고, 알레르기 호흡기 내과로 가는 동선과 엘리베이터가 따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더 걱정스러웠다. 내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된 느낌이었다. 호흡기 내과가 있는 응급치료센터 건물 6층에 도착하자 새로 마련된 공간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바닥부터 진료실 출입문 등등이 새집마냥 깔끔했다. 코로나19로 긴급히 만들어진 곳이구나.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애써 김선호 유튜브를 시청하며 두근대는 시간을 날려보내고 20여분 정도 ..

지피지기 2021.01.06

가족문화

엄마와 남동생이 오랜만에 우리 집에 왔다. 동생은 신경써서 고른 와인 두 병과 조카들을 위한 선물을 들고, 그리고 아들과 함께한 하루가 아쉬워 부산에서 쫓아온 엄마까지. 그나마 대화가 즐거운 네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다. 남편은 두 사람을 대접하기 위해 거한 상차림에 정성을 기울이고, 나는 서둘러 청소를 마쳤다. 하지만 남동생은 반갑지 않은 소식까지 가지고 왔다.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아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을 한 지 3년째.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아이도 만들려고 하지 않는 동생을 알고 있어서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남편은 엄마 앞에서 그런 얘기를 서슴없이 꺼내는 남동생을 꽤 불편해 했다. 어쩜 그런 걱정거리를 부모님도 아시게 하는거냐가 관련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이미 알고 ..

지피지기 2021.01.03

2020년을 보내버리자

일상의 절반 이상을 빼앗아 가버린 코로나 때문에 2020년은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해다. 다행히 해를 넘기기 전에 자가격리 해제 전 검사 통보를 받아서 기분이 조금 낫네. 여차여차 사연 많았던 올 한해. 그래도 아이들은 꾸준히 자랐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인스타를 쭈욱- 내려봤다. 그렇게 백지혜로 살겠다며 내 이름을 부르짓고 외쳐 살았지만 세 아이로 시작해서 세 아이로 끝이나 있더라. 그래. 운남매들도 내 삶의 일부이니, 내년엔 좀 더 경건하게 너희들을 받아들이겠다. 푸하하. 부족한 작가로 3년 차에 접어든 채 KBS로 이직을 한 것이 내겐 가장 큰 이슈였던 2020년. 정리하고 이직하고 적응하느라 눈 코 뜰새 없이 바빴던, 영상과 유튜브의 매력에 취했던 하반기였다. 그리고 하나 더 이룬 성과가 있..

오직사유 2020.12.31

생일

12월 29일은 첫째, 시운이의 생일. 그리고 다음 날 30일은 남편 정원현씨의 생일이다. 25일 크리스마스 케익을 시작으로 12월은 모두 세개의 케익에 촛불을 밝혔다. 둘째, 지운이 생일도 11월 끝자락. 막내도 2월 초가 생일이니- 사실상 우리 가족은 죄다 겨울에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나만 한여름이야. 나만 O형이고. 나만 백씨고. 워메 서러운 것) 이틀 전, 본의아니게 남편 자랑처럼 보이는 글을 썼었다. 자랑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내가 얼마나 못나 보이는 가에 대한 글이었는데, 구독해주시는 분들의 눈엔 그렇게 보였었나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럼 오늘은 잃은 것에 대해 한 번 써볼까?! 남편은 기념일 챙기기에 굉장히 서툰 사람이다. 연애 때도 그랬지만 빼빼로데이, 발렌타인데이..

오직사유 2020.12.31

알러지의 여파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란 어떤 환경일까. 미세먼지 하나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하고픈 부모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어 버렸다. 아토피와 같은 피부 질환, 비염과 같은 알러지 반응 없는 아이는 그야말로 행운. 우리 아이들도 둘째를 제외하고는 나와 비슷한 비염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코가 자주 막히고 입으로 숨을 쉬면서 구강구조까지 변했던 나다. 콧물이 흐르는 날도 많고 숨 쉬는 게 원활하지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집중력도 떨어졌다. 잠도 깊이 들지 못했을 것이며 충분히 자지 못했으니 다음 날 수업시간에도 지장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내 학창시절이 그랬다. 알러지 비염 하나가 많은 것에 영향을 미쳤다. 환절기만 되면 증상이 도드라졌다. 코맹..

지피지기 2020.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