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사유

생일

어진백작 2020. 12. 31. 04:46

12월 29일은 첫째, 시운이의 생일. 그리고 다음 날 30일은 남편 정원현씨의 생일이다. 25일 크리스마스 케익을 시작으로 12월은 모두 세개의 케익에 촛불을 밝혔다. 둘째, 지운이 생일도 11월 끝자락. 막내도 2월 초가 생일이니- 사실상 우리 가족은 죄다 겨울에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나만 한여름이야. 나만 O형이고. 나만 백씨고. 워메 서러운 것) 

 

이틀 전, 본의아니게 남편 자랑처럼 보이는 글을 썼었다. 자랑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내가 얼마나 못나 보이는 가에 대한 글이었는데, 구독해주시는 분들의 눈엔 그렇게 보였었나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럼 오늘은 잃은 것에 대해 한 번 써볼까?!

 

남편은 기념일 챙기기에 굉장히 서툰 사람이다. 연애 때도 그랬지만 빼빼로데이, 발렌타인데이는 챙겨본 적이 없다. 결혼을 한 후 첫번째 결혼 기념일에도 준비하나 없는 이 사람에게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모른다. 당연히 내 생일에도 그랬다. 내겐 굉장히 특별한 날임에도 남편은 큰 이벤트 하나 없이 운좋게도 6년동안 무사히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내게 있어 '생일'이란 엄청난 날이다. 내가 인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의 생일은 왠만하면 빠뜨리지 않고 축하해주려 한다. 오랫동안 왕래 없이 지냈어도 '생일'만은 챙기는게 도리라고 여기는 사람중에 한 명이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나랑은 만나지도 못했을 사이가 아닌가. 게다가 생명의 신비를 3번이나 겪은 나로서는 시끌벅적한 이벤트는 아니더라도, 상다리가 부러질 듯 차려내는 생일 상이 없더라도, '생일'은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완전 상극인 남자를 만났다. 얼마 전엔 생일 선물 뭐 받고 싶어? 라는 질문을 한 번 했다가 부부싸움으로 끝을 맺었다. 대단한 선물을 얘기한다고 해서 들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만원짜리 혹은 편지 하나를 써주더라도 의미있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어른이 무슨 생일을 챙기냐고 말한다. 그 돈으로 생활비나 보태라고 하는 저 남자가 얼마나 무드가 없고 세상 고리타분한지... 또 한 번 뼛속까지 깨달았다. (자상한 아빠일뿐, 자상한 남편은 아닌)

 

남편 생일인 오늘, 나는 출근을 했다. 미역국 하나 못 끓여주고 출근해 속상했다. 한참을 아이들과 지지고 볶다가 운동 나간 김에 순대국밥을 한 그릇하고 오겠다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크리스마스 때 샀던 케익과 시운이 생일 케익이 남아있어서 남편 생일 케익까지 사면 또 잔소리를 하겠지?! 하고 눈치를 보는 내가 싫어서 퇴근 길에 케익을 사버렸다. 편지 한장 쓰려고 했는데 애들 재우느라 또 놓치고.... 새벽에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역시 생일에 무뎌가는 사람이 되어 버렸나 싶어 괜시리 한숨이 쉬어진다. 

 

결혼은 이해의 연속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들 생일도 제대로 기억못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은 그럴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매년 자신의 생일은 자신이 기억하는 정도로만 넘겼던 유년시절 때문에 그럴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오늘 나 생일이야. 라고 얘기하지 않으면 자신을 낳은 엄마도 모르고 넘어가는 그런 생일이었다고 생각하니 더 가슴이 찡하다.

 

아이들이 자라서 자기 생일보다 엄마아빠 생일을 더 챙기는 날이 오면... 그 때는 남편이 좀 달라질까? 자신의 생일을 좀 더 소중히 여기고, 덩달아 나의 생일도 좀 뜻 깊게 여겨주게 될까? 마음은 있는데 표현이 안되는 거겠지? 오늘 글도 물음표 투성이다. 한 해를 마무리 해야하는데, 두 사람의 생일이 연달아 있어서 올해도 숨가쁘게 마무리 되어 간다.

 

내일은 자가격리 마무리를 앞두고 두 번째 검사를 하러 가는 날! 우리 가족은 1월 1일 탈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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