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

충격적인 병명

어진백작 2021. 1. 6. 03:38

일주일 전 예약해뒀던 대학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다. 코로나19 확진자 소식이 연일 8명, 5명, 3명 끊이질 않는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대학병원으로 가는 발길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KF94 마스크를 착용했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과의 접촉도 왠만하면 피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고, 알레르기 호흡기 내과로 가는 동선과 엘리베이터가 따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더 걱정스러웠다. 내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된 느낌이었다. 

 

호흡기 내과가 있는 응급치료센터 건물 6층에 도착하자 새로 마련된 공간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바닥부터 진료실 출입문 등등이 새집마냥 깔끔했다. 코로나19로 긴급히 만들어진 곳이구나.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애써 김선호 유튜브를 시청하며 두근대는 시간을 날려보내고 20여분 정도 기다렸다가 교수방으로 들어갔다. 

 

증상이 어때요?! / 기침이 심해요./ 얼마나 됐어요? / 환절기부터 시작했으니까 4개월 가까이 됩니다. / 왜 이제야 왔어요? / ..........?????? /

 

'계절성 알러지'쯤으로 알고 갔던 내게 내려진 병명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강원도 어디 산골, 탄광촌에서나 걸릴법한 '천식'. 주변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옛날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어떤 인물이 죽을듯이 기침을 하다 한 손에 쥐어지는 크기의 호흡기 치료 기계 같은 걸 입에 물고 몇 번의 긴 호흡 끝에 진정이 되던 장면이 떠올랐다. 내 오랜 기침의 원인이 그 '천식' 일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이라 헛웃음이 났다.

 

내가 왜 이제 왔는지 물었죠? / 네..... / 비염이 언제부터 있었나요? / 어릴 적부터 달고 살았어요. 만성질환이라고 알고 있고, 약으로는 억제효과만 있지 근본적인 치료는 안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치료를 할 생각은 안했어요? / 비염이 치료가 가능한가요? /  당연하죠. 생활습관을 바꾸면 가능하죠. / 아........ /  비염치료를 미리 했으면 천식 안왔어요. / 치료가 안될 거라는 잘못된 본인의 판단으로 몸을 내팽겨뒀다가 병을 키운거예요./ ......................................... /  천식은 치료가 가능한가요? / 자! 나도 천식이 있어요. 그래서 이 병을 내가 잘 알아요.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세요. 그럼 나을 수 있습니다. / 평생 약을 먹어야 하나요? / 솔직히 말해서 약만 잘 먹으면 이틀만에도 기침이 멈춰요. 그런데 이게 완전한 치료는 아닙니다. 환절기마다 겪는다고 했으니까 적어도 1년은 지켜봐야해요. 단, 절대 과로와 스트레스는 안됩니다. 그럼 1년보다 훨씬 더 길어져요. / 과로와 스트레스 안받는 현대인이 어디있습니까? / 절대로 열심히 살 생각, 하지 마세요. 이번 생은 놀다가 죽겠다고 생각하고 살아야해요. / 교수님... 제가 애가 셋인데요..... (과로와 스트레스를 어떻게 하면 안 받을 수 있을까요.......)   

 

열심히 사는 게 내 주특기인데, 열심히 살지 말라니... 나의 하루는 과로로 시작해서 과로로 끝나는데 그걸 하지 말라니... 일을 해야 삶의 활력을 얻는 사람한테 과로와 스트레스 없이 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래서 덧붙였다. 

 

교수님도 천식 있다고 하셨죠? 그럼 교수님도 이 일을 그만두셔야 하는 거 아입니까? /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만 둘 순 없죠. /

 

그럼 나는. 그럼 나느은~~~~~~~~~~~~~~ 나는 살기위해서 일하는 건데. 집을 나가서 회사 출근하는 게 내 삶의 낙인데, 그걸 포기해야 하나....?!???!?!???!?!? 심경이 복잡하다. 일단 내일 아침까지 원고 마감날이어서 방금 전까지 어깨죽지에 고통을 이겨가며 작성했다. 게다가 팀장이 날마다 전화해서 재촉하는 바람에 기획안을 2개나 썼다. 3시간 잘똥 말똥이다. 

 

이 천식은 누가 만들어낸 천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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