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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나은 아빠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웠더니 팀장이 대놓고 압박 전화를 걸어왔다. 회사 내규상 음성 결과만 있으면 별 문제 없으니 괜찮으면 출근해달라고. 아이가 셋인 걸 모를 리 없는 팀장이 직접 요구를 해오는 걸 보면 정말 다급한 것이다. 곧 있을 경남도 프로젝트를 얼른 시작하자는 신호라 여기고 오랜만에 창원으로 출근을 했다. 세 아이를 두고 오랜만에 집을 나서는 기분은 뭐랄까. 정말 걱정이 1도 되지 않았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케어할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보고를 하라고 한 적도 없는데 12시를 넘기자 저 사진이 전송되었다. 음- 역시! 대단해 대단해. 믿어 의심치 않는 남편의 육아점수는 백점 만점에 120점! 내가 프리랜서가 아니라 남편만큼 돈을 버는 직업이었음 좋았을껄... 그럼 눈치하나 안 보고 육아와 직장생..

육아전쟁 2020.12.29

일 할 수 있는 시간을 줄게.

하루에도 수십 번 아이들과 밀당을 한다. 가장 쉽게는 '장난감 정리 해~ 칭찬 스티커 하나 붙여준다~!' 로 시작해서 응당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보고 싶은 유튜브 컨텐츠 2개씩 보여주기!' 로 아이들을 설득시킨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지만 이것마저 안한다면 정상적인 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왔던 탓일까. 밥을 먹지 않고 사탕부터 뜯어달라고 떼를 쓰는 지운이에게 '아니된다'고 강경하게 대했더니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방금 전까지 서로 장난감을 갖고 놀겠다고 피터지게 싸우던 시운이가 사탕을 못 먹어서 훌쩍이고 있는 지운이를 위해 나와의 밀당을 시작했다. "엄마, 이 사탕껍질을 벗겨주면 엄마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줄게." 엄마가 사탕껍질을 벗..

오직사유 2020.12.27

안메리크리스마스

자가격리 중에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왔다. 와인 한 병은 사두었지만 이브 날 저녁, 남편과 나는 애들을 재우다가 곯아 떨어졌다.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은 택배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하루 정도 늦춰졌고, 산타 할아버지도 코로나19에 걸려서 자가격리 중이라 선물이 조금 늦게 올 수도 있다는 말로 둘러댔다. 이런 와중에 무슨 메리한 크리스마스?! 쳇이다. 뿡이다. 올해 크리스마스 낭만은 어디가고 없다. 남편 회사에서 연말 선물 대신 케익을 돌렸다고 했다. 함께 자가격리 중인 남편이 회사에 나가지 못하자 함안에 산다는 동료가 퇴근 길에 가져다 주었다. 바깥 공기 한 번 제대로 쐬지 못하는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 끄트머리를 붙잡고 겨우겨우 느낌만 낼 수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더이상 불이 꺼지지 않자 손으로..

육아전쟁 2020.12.25

모노폴리 편 후기

오늘 모노폴리 게임을 촬영했던 영상이 7시 뉴스로 송출됐다. 이 한 편의 영상을 제작하는데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 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드는지 함께 만들고 지켜보면서 알았다. 영상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시간들이었다. 라디오 진행자 공고 발표가 생각보다 빨리 났다.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영상을 마무리하기 위한 작업으로 1분 1초가 바쁜 상황이어서 아쉬움은 깔끔하게 묻혔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채운이가 입원했던 기간동안 구성을 위한 자료수집을 했다. 참고가 될 만한 영상을 찾고, 필요한 부분은 손으로 적어봤다. 커다란 하나의 흐름을 꿰어차기 위한 노력은 자료 수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 때 깨달았다. 몰입과 집중이 필요했다...

작가세계 2020.12.24

놓을 수 없는 꿈

평소 내게 소소한 알바거리를 던져 주시는 시사평론가 한 분이 계신데, 어느 날은 다른 공고 하나를 툭 하고 던져 주시는 거다. 진주 KBS 라디오 진행자 모집 공고. 시간도 오전 11시. 매일 50분 진행. 방송국이 무려 '진주'. TBN 전설같은 MC, 김혜란 선배와 만났던 자리에서 내꿈에 대한 얘기를 기억하셨는지, '백작가님께 딱이네유' 라는 한 마디와 함께 정말 넝쿨째 들어온 진행자 공고였다. 나는 원래 말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10년을 마이크를 잡았고 그 마이크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을 했고 마이크로 녹음해 내 귀로 다시 들리는, 그런 내 목소리를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평생 내 이름을 건 프로그램 진행 한 번 해보는 것이 최종 목표이고 꿈임에는 변함이 없다. 작가를 시작한 것도..

지피지기 2020.12.23

2주 간의 자가격리에 들어갑니다

아이들 유치원 근처 초등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해도 '설마?! 내게도 코로나가?!' 하고 철저하게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마음 같아선 아이들을 끼고 집에만 있었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아이들 유치원 원아생 중에 확진자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가족들 모두 자가격리를 부탁한다는 유치원의 문자를 받은 건, 토요일 오전 11시 40분 경.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아침을 해먹고 김장을 하기 위해 부산 친정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문산IC를 진입하기 직전에 문자를 확인해 차를 돌려야만 했다. 무려 서른 포기였다. 친정 부모님들께선 이번 김장을 일부러 남편 쉬는 날 하려고 한 달을 넘게 기다리신 건데,, 하필, 그 날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외가집을 간다고 들..

육아전쟁 2020.12.22

엄살을 부려보자.

오후 1시 30분을 갓 넘긴 시각. 둘째 유치원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갑자기 오는 전화는 늘 불안하다. 그 어떤 학부모라도 그럴 것이다. 얼마 전엔 등원을 시켜놓고 열이 37. 5도 라며 등원을 시키고 돌아선지 10분 만에 다시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았다가 엄청 열이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상담기간 약속된 시간의 전화가 아니면 그건 백퍼센트 나쁜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운이가 어지럽다고 그러네요. 점심도 거의 안먹었구요. 열은 없는데, 지금 데려가면 돌봐주실 분이 계실까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내가 출근을 하지 않았고 근처 망경동에 있었던터라 바로 달려가겠다고 했다. 어?! 아니다. 남편이 오늘 공연이 있어서 일찍 퇴근이 불가능하니까 첫째도 같이 데려가야겠구나. 그럼 지금은 너무 ..

육아전쟁 2020.12.18

역사 공부?! 나는 이걸로 한다.

중학교 때, 인간적으로 국사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잠시 잠깐 국사 교사를 꿈꾼 적이 있었다. 어찌나 이야기를 재밌게 하시는지, 홀딱 반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던 선생님.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자 '세계사'라는 과목이 생기고 점점 두꺼워지는 국사 교과서가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핑계가 좋다. 공부하기 싫어서였겠지.) 역사에 관련해서는 아주 충격적인 얘기를 유시민 작가가 했던 적이 있다. "역사를 공부를 게을리 하는 건 나는 무식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일이에요"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인간이 삶을 계속 영위함에 있어서 역사는 아주 중요한 지침이 된다는 맥락에서 했던 말로 기억한다. 아주아주 뜨끔했던 순간이었다.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역사책을 참고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오직사유 2020.12.17

10년 만에 건강검진

서른 살 맞은 기념으로 큰 돈 주고 건강검진한 이후로 거의 10년 만에 건강검진이다. 직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궁경부암 검사를 제외하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한 적이 없었다. 내 건강에 소홀했다기 보다, 세 번의 출산으로 내 건강을 조금씩 확인하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셋째가 태어나고 2년 정도 흘렀으니, 이제는 좀 해야되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남편이 한다길래 얼른 같이 신청해버렸다. 2018년부터 3개월 씩 3번에 걸쳐 한방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다. 실제로 효과도 톡톡히 봤고, 흔하게 발생한다는 부작용도 거의 겪지 않았다. 운동을 만병통치약 쯤으로 아는, 그것도 꼭 수영이어야 한다고 우기는 남편은 이상한 걸로 살을 뺀다고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잔소리를 해대서..

지피지기 2020.12.16

상처는 덮지 말고 드러내야 하는 것

유튜브를 보다가 소통전문가 김창옥 교수의 강연을 보게 됐다. 늘 재미와 센스가 넘치는 강연으로 정평이 나 있어 평소에도 좋아하는 강연자인데, 오늘 본 '가치들어요' 영상은 기존과는 조금 다른 진행이어서 연달아 두편이나 봤다. 그냥 강연만 하는게 아니라 사연을 신청한 게스트들도 여럿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모두의 눈물을 쏙 빼게 만든 울산의 한 가장의 이야기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울산 삼산동에서 돈가스 집을 하고 있는 이 분에겐 네명의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2번의 이혼으로 지금은 혼자서 아이들을 모두 키우고 있는 상황. 그런데 네 명의 아이들 중 둘째 여자아이는 9살임에도 불구하고 2살 지능을 가진, 발달 장애가 있는 아이였다. 엄마, 아빠가 함께 키워도 힘든 네명의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

오직사유 2020.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