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

나보다 나은 아빠

어진백작 2020. 12. 29. 01:38

아빠표 식사는 언제나 베스트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웠더니 팀장이 대놓고 압박 전화를 걸어왔다. 회사 내규상 음성 결과만 있으면 별 문제 없으니 괜찮으면 출근해달라고. 아이가 셋인 걸 모를 리 없는 팀장이 직접 요구를 해오는 걸 보면 정말 다급한 것이다. 곧 있을 경남도 프로젝트를 얼른 시작하자는 신호라 여기고 오랜만에 창원으로 출근을 했다. 

 

세 아이를 두고 오랜만에 집을 나서는 기분은 뭐랄까. 정말 걱정이 1도 되지 않았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케어할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보고를 하라고 한 적도 없는데 12시를 넘기자 저 사진이 전송되었다. 음- 역시! 대단해 대단해. 믿어 의심치 않는 남편의 육아점수는 백점 만점에 120점! 내가 프리랜서가 아니라 남편만큼 돈을 버는 직업이었음 좋았을껄... 그럼 눈치하나 안 보고 육아와 직장생활을 통째로 바꿨을 텐데. 

 

먹고 씹는 게 참 느린 둘째를 두고 왜 빨리 안씹냐고 다그치는 내가 있다면, 둘째의 식성을 완전히 파악하고 반찬부터 바꿔 내놓고 두 그릇 뚝딱하게 만드는 남편이다. 콧물이 계속 흐르는 셋째가 요즘 부쩍 밥 먹는 게 부실한데, 스스로 먹지 않으면 안먹겠거니 하고 밥상을 치우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어떻게든 웃기고 꼬셔서 한 그릇을 다 비우게 만든다. 그야말로 엄지척이다. 잠을 재울 때도 마찬가지. 아빠가 없을 때만 내 곁을 둘러싸고 자는 아이들. 아빠랑 같이 잘 때면 셋이 다 달려들어도 이내 쿨쿨쿨 애들을 재워내는 저 사람은 육아의 천재, 고수다. 미울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요리도 재료가 무엇이든 남편 손에만 들어가면 뚝딱뚝딱 반찬이 만들어져 나온다. 가끔 난감한 맛을 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리가 나올 때도 있는데, 맛 없으면 안먹으면 된다. 굳이 이게 맛이 있니 없니 군소리할 필요가 없다. 알아서 다음번엔 시도를 안한다. 호박, 오이 볶음과 시금치, 콩나물 무침은 30분도 안돼 뚝딱뚝딱. 애들은 아빠가 요리사인줄 안다. 갑자기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그럼 엄마가 잘 하는 건 뭐야? 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

 

"음... 빨래개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편 자랑을 하고 싶어서 쓴 글이 아니다. 오늘 나를 스치고 간 기분을 설명하기 위한 전제 글이 필요해서 적어봤다. 마침 오늘 낮에 카톡으로 날라온 사진도 있고 해서. 

 

아이들 육아에 안그래도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남편의 저런 능력 때문에 내가 더 일에 집착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늘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은가. 그 누군가가 내 자신이 될 수도 있고. 아이가 하나라면 모를까, 셋을 다 커버하기에 늘 허덕이는 내가 참 못난 사람 같아서, 나를 인정할 수 있는 다른 게 뭐가 있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닿게된 사실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바로 '포기 하지 않음'이므로. 그래. 그럴수도 있겠구나... 가 된 것이다. 

 

오늘 우리 집 저녁 식사 풍경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지켜봤다. 퇴근을 하고 온 나는 샤워를 하고 나와 소고기 무국을 끓이이고, 남편은 30분 전 마트에서 사온 생선 전갱이를 굽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식기들은 내가 설거지를 한다. (남편이 요리하는 건 다 좋은데, 주방정리를 안한다. 그게 젤 큰 단점이다) 국과 생선이 동시에 마무리되자 시엄니가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고 아이들을 앉히기 시작한다. 하나둘씩 자리를 찾아 앉은 아이들은 밥을 먹기 시작하고, 여전히 손이 필요한 둘째는 남편이 전담한다. 시엄니가 식사를 하실 동안 나는 셋째를 맡아 밥을 먹이고, 어머님 식사가 끝나면 그제서야 내가 숟가락을 뜬다. 아! 남편은 저녁을 아까아까 먹었다. 모두 앉아서 한꺼번에 식사가 어려운 우리집. 자연스럽게 손발이 맞아떨어진다.

 

밥상이 다 치워질 때까지 주방에서 복작복작 6명이 부대끼는 모습이 그리 싫지 않다.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함께 밥상을 치우는 모습을 늘 보고 자란 아이들은 또 그렇게 자신의 그림을 채워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당연히 그런 모습일 건데,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벌써 꼰대인가?! 어우 촌스러워. 오늘도 무사히 하루가 지나간다. 

 

 

덧붙이는 이야기.

- 요리하는 남편. 다 좋은데 왜 가스렌지 청소는 그리 하기 싫은거야? 애들 잘보는 건 좋은데, 왜 집 치우기에는 손하나 까딱 안하는 거지? 빨래는 세탁기며 건조기며 잘 돌리면서 왜 개는 건 안하려는 거지?! 그것 참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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