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

저 분을 존경합니다

어진백작 2021. 2. 2. 06:12

 

 

시운이가 뿅망치와 색색깔 블럭을 가져와서 놀자고 했다. '할리갈리'라는 단어를 쓰던데, 내가 알고 있는 할리갈리와는 다른 것 같아서 정확하게 어떤 걸 요구하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5개의 블럭으로 자기가 혼자 모양을 만들어 뿅망치를 치는데, 결국 남편한테 그 임무가 전가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 게임은 둘이서는 할 수가 없는 게임이었다. 

 

시운이는 남편에게 가서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그런데 남편은 시운이의 의도를 알아챘다. 그리고 저리 재미있게 놀아줬다. 무엇의 차이일까? 어느 지점에서 나는 모르고, 남편은 알 수 있었을까? 사랑 정도의 차이일까? 의도를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아예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건가? '땡' 한마디에도 꺄르르 넘어가는 아이들인데,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아이의 신호를 '둔하기로 소문난' 나는 얼마나 알아채고 있을까? 

 

이런 지점에 자주 다다를수록, 나의 모지람을 채워주는 저 분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난다. 처음부터 그랬다. 늘, 나보다 아이들을 잘 챙기고 잘 다독였다. 상대적으로 육아의 노하우는 나보다 저 분이 한 스무배는 더 가지고 있다고 본다. 

 

지운이의 눈빛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것에 앞서는 누나를 어떻게든 한 번은 이겨보려고 애쓰는 마음이 보인다. 아빠가 보여준 블럭의 모양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누나는 얼마나 만들고 있는지도 곁눈질로 확인한다. 한없이 착하고 베푸는 아이인줄만 알았는데, 경쟁심이 생각보다 높았다. 영상에 담기진 않았지만 누나를 이길 때도 있었다. 그럴 땐 굉장히 뿌듯해하더라. 끈기있게 해내고야마는 의지는 시운이보다 지운이가 더 높다. 이건 둘째이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막내는 그저 좋다. '땡' 이 뭔지, '딩동댕'이 뭔지도 모르지만 저 자리에 자신이 앉아 있을 수 있어 좋고, 자기 손에도 언니오빠와 같은 블럭이 있어서 좋다. 너무너무 기분이가 좋은 것이 한 눈에 봐도 보인다.

 

 

 

 

저 분의 고향은 경기도 일산. 스무살이 될 때까지 일산과 인천을 오가면서 자란 남자. 겨울이면 발에 치이는 게 눈이었는데, 아이들에게 눈을 보여주려면 2시간은 꼬박 달려야한다며 투덜투덜대면서도 2주 째 무주로 달려가는 분. 한 번은 무방비 상태로 갔다왔는데, 오자마자 아이들 스키복을 아래 위로 주문하고 방한부츠도 턱턱. 자기 옷에는 만원도 아까워하는 사람이 아이들거라면 참 정성들여 고르고 주문한다. 택배가 도착하는 날도 아이들보다 자신이 더 설레하면서 기다림. 내가 아이들한테 좀 덜 하게 된 이유 중엔 저 분의 적극적이고 재빠른 행동일 수도 있겠다. 

 

평소 운동량이 부족했던 요즘이었다. 그래서 운동도 할겸 아이들을 다 태우고 '유격! 유격!' 지치지 않고 달린다. 그 활동량은 저 자리에 있었던 다른 아빠들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이 해맑고 예쁘게 자라준다면, 그 성공의 8할은 저 분이 다 해내신거다. 나는 낳아준 것 밖에 없다 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나보고 애 셋 키운다고 고생한다고 하지 말아요.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부끄러워 죽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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