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

2주 간의 자가격리에 들어갑니다

어진백작 2020. 12. 22. 01:29

아이의 유치원에 세워진 선별진료소- 이 망할놈의 코로나19

 

아이들 유치원 근처 초등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해도 '설마?! 내게도 코로나가?!' 하고 철저하게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마음 같아선 아이들을 끼고 집에만 있었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아이들 유치원 원아생 중에 확진자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가족들 모두 자가격리를 부탁한다는 유치원의 문자를 받은 건, 토요일 오전 11시 40분 경.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아침을 해먹고 김장을 하기 위해 부산 친정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문산IC를 진입하기 직전에 문자를 확인해 차를 돌려야만 했다. 무려 서른 포기였다. 친정 부모님들께선 이번 김장을 일부러 남편 쉬는 날 하려고 한 달을 넘게 기다리신 건데,, 하필, 그 날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외가집을 간다고 들떠있던 아이들을 설득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고, 외출을 나가셨던 시어머님 호출도 결코 쉽지 않았다. 

 

확진자로 판명난 유치원의 원아생이 누군지 궁금했다. 우리 아이들이 접촉자인지 아닌지도 궁금했다. 일단 검사는 가족 모두가 받아야겠지?! 막내도 어린이집 등원을 해선 안되겠지?! 회사에는 뭐라고 말하나?! 의문 투성이, 머릿속에 복잡해지면서 그야말로 멘붕! 쌌던 짐을 다시 풀면서 이후의 조치들을 생각하던 도중, 유치원에 선별진료소를 설치하기로 했으니 모든 원아생들은 와서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므로, 나와 남편은 각자 움직이기로 했다. 남편은 가까운 보건소로 시엄니와 막내를 데리고 검사를 하러 가고 나는 두 아이들과 유치원으로 향했다. 유치원에 얼마나 사람들이 몰릴지 몰라, 조금이라도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게 좋으니까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유치원에 도착한 나와 아이들은 30여분 줄을 서 있다 검사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동선이 겹침을 확인했다. 확진아동과 접촉을 한 두 아이들은 접촉자로 분리돼 검사 결과와 관계없이 자가격리 2주를 판정받았다. 나는 접촉자의 접촉자이므로 검사결과 통보시까지만 격리해야한다고 했다. 말로만 들었던 자가격리. 보건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두 명과는 왠만하면 밥도 따로 먹고 잠도 따로 자야한다고 말했다. 그게 말이 되나?! 어떻게 이 어린 아이들이 자가격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건지, 들으면서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진주시 공무원은 자가격리자 구호물품을 던지고 도망갔다

 

하루를 꼬박 기다려 검사 결과를 통보받았다. 다행이 모두가 '음성'이었지만, 안심할 건 아니었다. 유치원에서 나온 확진 아동(진주 143번)은 학부모인 아버지(진주 141번)의 밀접접촉자였는데, 이 진주 141번은 8일부터 자가격리에 들어가 있다가 18일 증상이 발현돼 검사를 하고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접촉자의 자가격리 2주가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겼다. 과연 진주 141번은 완전한 자가격리를 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자녀인 143번이 등원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결국 143번까지 확진되지 않았나. 그렇다면 안전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완벽한 자가격리가 어려운 아이들 때문에 나도 능동적인 자가격리를 피할 수 없었다. 남편도 2주를 재택근무로 돌리고, 프리랜서인 나 역시 팀장에게 눈총을 받으며 2주간 격리에 들어갔다. 담당 공무원이 배정됐다. 수화기 넘어로 아이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이 분도 자녀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 이름으로 휴대폰이 없어서 매일 오전 10시, 오후 8시 문자로 상황을 전하기로 했다. (공기계도 안된다. 본인인증이 가능한 기기여야한다.)

 

다음 날, 구호물품이 도착했다. 두 박스가 문앞에 던저졌음이 한 눈에 보였다. 뭐가 두려워서 급히 던지고 도망치듯 아파트를 빠져나갔는지 모르겠다. 확진자가 아님에도 벌써 눈치를 봐야 할 지경이다. 남편도 다른 사람이 보기 전에 얼른 들고 들어왔다. 그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저절로 혀가 끌끌 차였다. 

 

아이들은 아무런 증상이 없다. 이 에너지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나는 그게 더 두려웠다. 확진이 아닌것보다야 낫다지만, 애들 둘 뿐인가 어디. 시엄니에 막내에 남편에... 여섯 식구가 2주 동안 한 집에서 지지고 볶을 생각을 하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우선 개인시간이 사라진다. 하루종일 뒤치닥거리에 돌아서면 할 일이 보이는 집구석에서 나는 2주나 버틸 자신이 없다. 저절로 목소리가 커졌고 말을 안듣는 아이들 등 뒤로 고성을 내고 있는 날 발견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지쳐버렸다. 

 

남편은 회사에 나가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한껏 업이 돼서 콧노래를 부르고 반찬을 두세 가지씩 한다. 괜히 오바하지 말라고 에너지를 나누어 써야지 격리 첫 날 쏟아붓지 말라고 했더니 귀등으로 받아친다. 복작복작한게 너무 싫다고 말하는 나를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동감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하기 싫다. 

 

'아프지 않은 게 어디야' 라는 말로 위로 안된다. 아이가 셋이나 된 건 우연이지, 내가 집안 일 또는 육아에 도가 튼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늘 힘에 부치고 이 사람들로 내 생활이 간섭을 당하거나 내 시간이 위협을 당하면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랑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다. 엄마이기 때문에 참아야하고 엄마이기 때문에 견뎌야 한다는 구닥다리 생각들은 들이대지 말라. 엄마도 사람이다. 에이씨.

 

결론이 이상하게 빠졌다. 실제로 내가 겪는 일이 되어보니 방역에 공백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버젓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 시국에 사우나에 가는 사람들, 스키장에 가는 사람들, 연말이라고 약속을 잡는 사람들이 이 심정을 알려나 모르겠다. 코로나19가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결국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꼴이다. 어쩔 수 없이 접촉하는 경우야 정말 운에 달렸다 하지만, 적어도 지성인이라면. 적어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지 말자. 나만 죽는 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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