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

엄살을 부려보자.

어진백작 2020. 12. 18. 01:37

오후 1시 30분을 갓 넘긴 시각. 둘째 유치원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갑자기 오는 전화는 늘 불안하다. 그 어떤 학부모라도 그럴 것이다. 얼마 전엔 등원을 시켜놓고 열이 37. 5도 라며 등원을 시키고 돌아선지 10분 만에 다시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았다가 엄청 열이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상담기간 약속된 시간의 전화가 아니면 그건 백퍼센트 나쁜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운이가 어지럽다고 그러네요. 점심도 거의 안먹었구요. 열은 없는데, 지금 데려가면 돌봐주실 분이 계실까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내가 출근을 하지 않았고 근처 망경동에 있었던터라 바로 달려가겠다고 했다. 어?! 아니다. 남편이 오늘 공연이 있어서 일찍 퇴근이 불가능하니까 첫째도 같이 데려가야겠구나. 그럼 지금은 너무 이른데?! 원고 좀 쓰다가 3시쯤 데리러 가야겠다.  

 

한 챕터를 마무리도 하기 전에 3시가 됐다. 마음이 급하니까 문장이 완성조차 되지 않는다. 작가들이 긴 글을 쓰기 위해 왜 산속으로 들어가는지 이유를 알겠다. 긴 호흡의 글을 작성할 때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집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고지 4장 분량이라 크게 어렵진 않았지만 어쨌든 완성도 시키기 전에 일어서야 했다. 조금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유치원 입구에 서서 달려오는 둘째를 살펴봤다. 아무리 봐도 아픈 아이 같지 않았다.

 

"지운아, 오늘 어디가 불편했어?"

"응, 밥이 맛이 없었어. 그리고 어지러웠어."

"그래? 그럼 집에 얼른가서 쉬자."

"아니, 엄마 나 놀이터에서 좀 놀다 가도 돼?"

".........(이자식이....)........."

 

결국, 차에 올라탄 둘은 진주성을 가자 노래를 불렀고, 따스한 햇살 아래 잠시는 괜찮겠지... 라는 마음으로 얼른 한 바퀴만 돌자고 했다. 킥보드를 신나게 타는 얘네들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남편에게 이렇게 전송했다.

 

"엄살쟁이들"

 

그래... 너네들도 농땡이 부리고 싶은 날이 가끔 있을거야. 엄마는 충분히 이해해. 근데 그렇다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 안 되지. 그 말을 듣는 순간은 부모라면 누구나 심장이 덜컹! 거리거든. 놀고 싶으면 놀고 싶다 얘기해. 엄마 그렇게 공부만 시키고 그러지 않아~ 알잖아. 

 

다 큰 성인들도 한 번씩 엄살을 피울 때가 있는데 어린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그래도 철이 들고 나니까 나는 엄마아빠한테 아프단 말은 되도록이면 숨기게 되는데 말이지... 얘네들은 그럴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그냥 평생을 어리광 부리면 어떡하지?! 아닌가?! 그러지 않는 모습에 오히려 섭섭하려나?! 마음놓고 아프다 말하고 마음놓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나날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니까 음. 오늘이 좀 다행스럽네. 

 

저렇게 충분히 놀다가 느즈막히 집에 들어갔다. 밥먹고 씻기고 재우기까지 쉬지 않고 움직였더니 오늘은 너무너무 피곤하다. 이미 내 신체리듬은 5시 30분 하원에 맞춰져 있었나보다. 아고고. 내일은 내가 농땡이를 좀 부려야겠다. 촬영을 핑계로 통영에 드라이브 간다. 이건 팀장한테 절대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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