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

안메리크리스마스

어진백작 2020. 12. 25. 17:08

2m짜리 크리스마스 트리

 

자가격리 중에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왔다. 와인 한 병은 사두었지만 이브 날 저녁, 남편과 나는 애들을 재우다가 곯아 떨어졌다.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은 택배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하루 정도 늦춰졌고, 산타 할아버지도 코로나19에 걸려서 자가격리 중이라 선물이 조금 늦게 올 수도 있다는 말로 둘러댔다. 이런 와중에 무슨 메리한 크리스마스?! 쳇이다. 뿡이다. 올해 크리스마스 낭만은 어디가고 없다. 

 

남편 회사에서 연말 선물 대신 케익을 돌렸다고 했다. 함께 자가격리 중인 남편이 회사에 나가지 못하자 함안에 산다는 동료가 퇴근 길에 가져다 주었다. 바깥 공기 한 번 제대로 쐬지 못하는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 끄트머리를 붙잡고 겨우겨우 느낌만 낼 수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더이상 불이 꺼지지 않자 손으로 잡으려고 한 막내 덕분에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었던 어젯 밤. 

 

이상하게도 내겐 크리스마스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특별한 추억도 없다. 겨울만 되면 내 마음에도 찬바람이 불었었는지 남자친구와 헤어지기 일쑤였고, 거리의 화려한 불빛과 캐롤도 크게 감흥이 없었다. 그 땐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유일하게 크리스마스를 2번 보낸 남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우리 남편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더 어렸을 때로 돌아가보면, 중학생때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고 친했던 친구들에게 혹은 선생님께 드렸던 기억은 있다. 누가 더 많이 카드를 받았는지가 인기의 척도가 됐던 시절. 500원짜리, 2000원짜리, 5천원짜리 정도는 받아야 어깨가 쭉- 펴졌던 기억들. 어렸었다. 

 

조금 더 큰 뒤에는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성탄절을 왜 이렇게 떠들썩하게 기려야 하는지, 종교에 대한 거부 반응이 심한 것도 아닌데, 나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할로윈데이도 마찬가지. 외국의 풍습(?)과도 같은 날들을 어린이집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익히게 만드는 강압도 별로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너무 부정적인가...? 나도 분명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기다리고 설레던 아이였을텐데... 그 기억들은 싸그리 잊어버리고 냉소적인 어른이 돼다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어릴 때 우리 가족도 크리스마스 보단 12월 31일에 다같이 모여 카운트다운을 하고 새해를 맞는 날에 더 신나는 파티를 했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엄마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글은 애들 머리가 커지기 전에는 보여주면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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