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사유

평범한 결혼생활

어진백작 2021. 3. 14. 07:43

 

기다리던 책이 왔다. 원래라면 11일 진주문고를 달려가 샀어야 했지만, 진주 목욕탕 발 코로나가 심각해지는 바람에 온라인으로 주문해 받았다. 결혼 20주년을 맞아 남편에게 선물하기로 마음을 먹고 쓴 임경선 작가의 에세이 책. 도착한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되서 빵빵 터지는 웃음에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했다. 재밌다. 흔하디 흔한 결혼 생활 이야기가 아니라서 좋다. 

 

임경선 작가는 언젠가 한 신문사 지면에서 처음 발견한 이름이다. 연애상담 코너의 상담내용으로 내 시선을 끌었다. (20대 중반이었으니, 한참 그 분야에 관심이 많을 때였다) 세상에. 이렇게 쿨한 생각을 가진 여성이 있다고? 상세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시원시원하고 통쾌한 내용으로 상담을 이끌어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런데. 결혼 20주년 이라니.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 (이게 그렇게 놀랄일인가. 자꾸 내 나이를 까먹는다) 임경선 작가는 책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20년 쯤 살았으니 남편에 대해, 결혼생활에 대해 한 소리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고작 7년 밖에 되지 않은 나는 그럼, 여태 남편에 대해 함부러 말했었나? 싶어 조금 기가 죽었다.

 

옳다. '안정'은 개뿔. '불안정'의 연속이다.

 그러게. 누가 '안정적인 삶'을 가지려 결혼이란 걸 한단 말이야? 크으... 하기 전엔 절대 모르지. 하고나서야 깨닫는 것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헐.헐.헐. 하다가 헬.헬.헬. 한다지ㅋㅋㅋ (나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편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 아냐) 결혼생활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들을 아주 적확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신선하고, 한 편씩 이어지는 글마다 꼭 '한 방' 같은 게 있다.

 

 임경선 작가는 이번 책 내용이 뻔한 글이 될까 봐 자가 검열을 한다고 월간 채널 예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방송이나 대중매체에서 나오는 잉꼬부부에 관한 흔한 레토릭을 피하고 '아웅다웅하지만 우리는 사이가 좋아' 라는 생각은 너무 납작하다고 까지 얘기한다. 부부는 어디까지나 남자와 여자이고,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거고, 계속 둘 사이의 관계가 변하는 거라면서 어떤 순간 남남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서로 벽을 느끼고 차가워질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두 사람이 계속 좋은 의미로 변해가지 않으면 서로 호흡을 맞출 수가 없다고.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인간관계가 아니겠냐고. 서로 적당히 긴장하고 낯설었으면 좋겠다고. 

 

 연애 상담을 쿨하고 시원시원하게 했던 느낌을 떠올리면, 이 책에서도 충분히 부부관계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글일거라고 생각한다. 다 읽고 나면 나와 내 남편, 그리고 우리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이, 다른 시각이 생기게 될까? 은근 기대가 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책의 결론과도 같은 내용을 의외의 곳에서 발견했다. 임경선 작가와 절친인 요조의 인스타 피드에서. 임경선 작가는 요조에게 아주 단호하게 이렇게 얘기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혼은 엿같은 거니까 너는 하지마' 라는 구원의 의미였는지, '너 같이 연약한 아이는 결혼 같은 거 하면 안돼' 라는 돌려까기의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론이 저거라는 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역시 책을 받기 전, 이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SNS에 올렸다. '좋아요'만으론 공감의 힘이 넘치는지 댓글들이 곧 잘 달렸다. 특히 마지막 글귀에 더.

 

'말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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