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사유

이 남자의 관심

어진백작 2021. 3. 26. 06:24

 

오랜만에 등장한 정원현씨

 

 

'이사'. 사실 막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나오던 우리집의 화제였다. 그러니까 내가 MBC 구성작가로 바닥을 치고 있을 때도 그랬고, 그만두고 한 달 정도 쉬고 있을 때도, 창원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을 때도 늘 저녁 식사 자리에 앉으면 남편이 꺼내던 말, 첫머리에 있었다. 당분간 일을 쉬기로 한 올해 2월엔 진짜 실행에 옮길 기세였고, 막내의 키가 커지면 커질수록, 5명이 지그재그로 잠이 드는 패밀리 침대 위를 떠올릴 때마다 절실함을 깨달아왔다. 

 

"집 보러 갈래?"

 

이 한마디로 시작된 것이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집을 팔고, 새 집을 구하게 되고, 우리는 인테리어 할 곳들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인테리어 지옥'에 빠져 버렸다. 

 

51평 복층. 사실 이 집도 우리한텐 좁디 좁은 공간이다. (다른 분들은 이해가 잘 안가실테지만) 세 아이한테 나란히 한 방씩 나눠줄수조차 없다. 안방을 제외하고 시어머니께 방 한칸을 내어드리면, 남는 방은 두 개. 초등학교에 들어간 시운이 방을 하나 만들면, 남는 방은 하나. 세 명의 뜀박질을 감당할 아랫집 이웃이 어떤 분인지도 모를 일. 복층으로 아이들 장난감을 다 올려버릴 생각이다. 거기서 놀면, 그래. 더이상 뛰지마! 라는 말이 나오진 않겠지. 내가 갖고 싶던 내 책상, 내 책장, 내 서재의 꿈은 과연 이룰 수 있을까? (남은 방 하나를 내 서재 만들기로 눈독들이는 중...)

 

평수가 넓은 집은 걸레받이며 팬트리며 죄다 체리색 우드계열이다. 심지어 주방쪽은 하이그로시 문짝들이 블랙... (도대체 왜 검은색을 박아넣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가구들은 대부분이 화이트라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바꾸려면.... 필름지로 온 집안을 발라버리는 수밖에 없다. (필름값만 후덜덜) 자. 좋다. 도배와 필름지로 분위기 교체.

 

하... 그럼 주방이 문제다. 수납공간이 어마어마한 장점이 더 골칫거리가 됐다. 상부장 하부장 합쳐서 열 개가 넘는다. 심지어 서랍은 필름지로 교체가 안된단다. 아예 통째로 교체해야 하는데, 그럼 교체비용만 얼마나 나오는 거야? 10년이 넘은 아파트고, 당최 전 주인이 집 관리를 하지 않아서 여기저기 낡아 있었....(자주 써서 낡은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손 때 묻은 것보다 손 때가 묻지 않아 낡음을 보이는 것은 더 최악) 그래. 그럼 주방도 올체인지. 

 

그것뿐인가. 복층은 탑층에만 주어지는 일종의 메리트. 하지만 감수해야 할 것도 많다. 예를 들면, 누수? 특히 천장 누수는 더 골칫거리다. 누수로 천장 석고가 낡아빠진 곳이 몇 군데 더 있었고, 여기저기 금이 간 곳(크랙이라고 하더라) 도배를 하기 전에 보강작업 할 곳이 군데군데 있었다. 단열공사가 덜 됐는지 결로로 인한 것인지, 곰팡이가 펴 있는 거실 확장 구역은 대공사가 필요하단다. 견적보면서 사장님이 어렵게 꺼내신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이 집... 계약 하셨어요?" (계약을 했으니까 지금 인테리어 견적을 내고 있지요.... ㅠ)    

 

건축가인 이 분은 10년 이상 된 집은 구매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수가 있는 집은 사지 않는다 라는 철칙이 있다며... (사장님, 지금 그 말을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ㅠㅠ) 됐고.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것들만 고쳐서 살자! 라고 한 것이 어제까지의 과정이었다. 

 

이 글의 제목을 '남편의 관심'이라고 한 이유가 지금부터 나온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가 아닌 다른 것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사실은 이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 깨달았던 진실. 무슨 뜻이냐면,

 

인테리어를 하기로 맘 먹은 순간부터 남편은 유튜브를 파고 들기 시작했다. 내가 앞서 단열공사니 결로니 보강작업이라고 쓴 단어들도 그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이다. 남편도 본격적인 인테리어는 처음이라, 일주일이 넘도록 조사를 하고 공부를 해서 알려줬기 때문이다. 사실 인테리어라는 건 돈 많고 여유만 있으면 정말 맘편히 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돈이 없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봐야 하기 때문에 노력한다. 조사와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 어마어마하다.

 

내게는 지옥이었다. 모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진실을 파헤치니 모를수가 없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해? 나 너무 힘들어... 라고 말했지만, 남편은 귓등으로 내 말을 받아쳤다. 

 

"관심의 차이야" 

 

우리 집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에 대한 관심. 그게 있고 없고의 차이. 그게 당신과 나의 차이라고 하더라. (쳇! 성향의 차이가 아니고???????)

 

인테리어 세계는 모르면 속편하지만 알면 알수록 끝이없다. 인테리어 업자들도 마진을 남겨야 하니, 소비자가 모를만한 곳에서 이익을 챙긴다. 알고 가야 덤탱이를 안쓴다. 아는 척이 아니라 제대로 알아야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이 몇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만 살펴보면,

 

 

 

집에 달린 조명들을 슬로우 모션으로 촬영해보자. 그냥 켜져 있을 땐 모를 현상이 발생하는 집이 있을 것이다. 이걸 '플리커'라고 한단다. 알게 모르게 눈에 피로를 발생시키는 현상. 조명을 갈아 끼울 때, 전구를 갈 때 '플리커프리' 제품을 사야지 막을 수 있다. 단가로는 2천원 밖에 차이가 안나는데, 도매급으로 물건을 취급하는 인테리어 업자들에게는 그것도 마진이라, 모르고 맡겼다간 우리 집에 죄다 저런 조명들로 때려 박아 버린다. 지금 달린 집에 주방 식탁 등은 5만원짜리(내가 고른거)인데, 남편이 이사 갈 집에 새로 달거라고 사들인 식탁등은 20만원짜리다. 당연히 플리커프리 제품이고 그 중에서도 디자인이 우수한(스스로 보는 눈이 높아서 선택했다고 하는, 잘난 척도 엄청한다) 제품이라고. 식탁등 하나도 꼬박 이틀을 고민해서 사는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다. (자랑이 아니다. 정말 피곤하다. 나는 저렇게 사는 것이 힘들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이케아 주방 (보드뷔 하부장, 칼뷔 상판)

 

우리에게 익숙한 '한샘' 인테리어를 통해서 카드만 결제하면 철거, 설치 모든 걸 알아서 해주는 과정을 포기하게 만든 것도 남편이다. (아이고 머리야) 이케아 제품은 가성비 면에서 따를 자가 없다. 이케아 주방 견적을 500만원을 잡았다면, 같은 퀄리티로 한샘에선 천만원이 든다. 서랍형 수납공간 이음새부터 다르다. 친환경 제품인건 말할 필요도 없고. 대신에 디자인, 철거, 설치가 모두 셀프다. 이게 미칠 일이다. 물론 돈을 안들이려면 말이다. 견적을 위해 이케아 동부산 지점을 다녀왔다. 주방하나 바꾸는데 살펴봐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흐엉엉엉엉) 이건 글로 다 담을 수가 없다.

 

이런 저런 과정들에 재미를 붙이고 남편이 말하는 '관심'을 가지고 즐겨야하는데, 나는 피곤해 죽을 것 같다. 인테리어 지옥에 빠진 것만 같다. 즐겁게 해보라고 말하는 남자랑 같이 살려니 미치겠다. (남편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ㅋㅋㅋ찌찌뽕!!) 

 

이사 갈 집에 견적을 보러 몰래 들어간 횟수가 열번은 되는 것 같다. (전 주인은 울산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번 주말까지 짐을 모두 빼고 나면 철거에 들어간다. 남편이 인테리어 업자들이 드나드는 동안 감시, 정확히는 감리 업무를 내게 맡겼다. (벌써부터 목과 어깨가 결려온다) 아마 이사 들어갈 때까지 이렇게 나를 괴롭힐 것 같다 ㅠㅠ (괴롭힌다고 표현했다고 섭섭해 하겠지만...)

 

나보다 이케아, 코스트코 쇼핑을 즐기는 남자. 나보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남자. 하나를 결정해도 열두번은 더 생각하는 남자(결혼상대로 나를 고려했을 시간과 과정을 떠올리니 무섭;;;;;) 하아. 이 남자의 '관심'으로 재정비될 우리집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지금도 완전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나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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