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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비정규직

밤 10시가 안되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인사과에서 필요서류를 보강해달라는 요청을 받은지 3시간 만이었다. 아이들은 남편에게 맡겨놓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속도를 붙여 부지런히 해야 끝낼 수 있는 양이었다. 쉬지 않고 타자를 두드렸고, 아이들을 재우다가 잠이든 남편이 방문을 열었다. "다 했어?" "응, 다했어." 새벽 3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각, 6시간을 꼬박 저것(?)을 만드느라 생 노가다를 했다. "구분, 숫자만 좀 챙겨줘. 눈 좀 붙일께." "응." 처음 보강 요청을 받았을 때 머리가 하얬었다. 부지런히 원고와 큐시트를 챙긴 것 같았는데, 폴더가 사라졌던 것. 공용메일을 뒤질까, 같이 일하던 작가들한테 이리저리 연락을 하고 물었다. 그 어디에도 내가 쓴 원고와 큐시트는 없었다. 내가 챙기지 않으..

지피지기 2021.08.14

도전병

새벽 3시 30분에 눈을 뜨고야 말았다. 근 1년 간 숨 한 번 차오르적 없다가 '살려고'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그래봤자 파워워킹, 하루에 '6천보 걷기'지만 말이다. 이틀째가 되니 근육들이 놀랐다. 정강이며 허벅지며 놀란 근육들이 울어대기 시작한다. 그만하라고, 이러다 죽을 것 같다고 항변한다. 후후. 그러나 나는 안다. 요것도 3, 4일이면 곧 잠잠해질 것을.... 몸이 아프니 일찍 잠이 들었다. 유난히 피곤했던 하루였다. 음식량을 줄였더니 금새 배가 고파졌다. 고픈 배를 움켜잡고 빨리 잠이들었다. 7시 이후 먹지 않아야, 그것이 다이어트이므로. 밤 공기가 차가워져서 비염 증상인 콧물이 흘렀다. 일어나서 정비하니 3시 30분... 아... 오늘 일정도 빡센데... 오후를 잘 버틸 수 ..

지피지기 2021.08.11

100번째 글을 작성하며

며칠 째 불편한 마음을 다독이며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내고 있다. 언어폭력을 날리셨던 시어머니와는 대화 한 마디도 섞지 않고 지내고 있고, 상처받은 남편 역시 잠시 무관심으로 일관해본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감정 사이 그 어디쯤에서 적당히 눈치를 보고 적당히 투정도 부리며 오늘도 자라는 중일테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을 많이 겪으면 겪을 수록 철이 빨리드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지쳐버릴까봐. 난 그게 제일 두렵다. 마인트 컨트롤을 굉장히 잘 하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았다.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은 편이라 그런 착각 속에서 지낸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무감각했던 성격상의 특징에 불과했다. 한시라도 자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 속에 살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꾸..

오직사유 2021.07.26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용돈을 두 달치나 주지 않는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든다. 일곱살 같은 우리 시어머니의 이야기다. 어제, 남편과 투닥투닥 말다툼이 있었는데, 목소리가 좀 크게 나왔다. 덥고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누구하나 뭐 잘한 것 없는 그런 싸움정도였다. 그런데 그 일을 곱씹으며 화가 나셨는지 주방으로 나와 아침 댓바람부터 쏘아대시는 거다. "니가 남편 밥 한 번 제대로 차려준 적이 있냐? 뭘 잘했다고 싸우길 싸워?" 제대로 시비를 걸어오셨다. 너무나 격앙된 목소리, 흔들리는 눈빛, 그러면서도 정확한 손가락질로 나를 몰아세웠다. 순수할 땐 세상 걱정 하나 없는 소녀처럼 굴다가도 극한에 몰리면 막장 드라마 저리가라 할 정도의 욕받이 국민 시어머니로 변신한다.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극과 극을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

오직사유 2021.07.20

필사하기 좋은 날, 물론 만년필로!

2018년 5월 어느 날, '필사의 기초'를 쓰신 조경국 작가님의 제안으로 작은 모임이 하나 만들어졌다. 셋째 아이를 가지고 좋은 태교가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페북에서 조작가님 피드를 보고 냅다 신청했던 것인데 마침 방송작가일도 시작했던 터라 필사라는 취미가 꽤나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5개월 정도 꾸준히 썼다. 그 땐 만년필의 매력까진 모를 때여서 모임 회원들이 잉크랑 노트, 만년필 모델 얘기를 할 때 할 말이 없었다. 막 시작했던 작가일로 여유가 없었을 때라 그랬던 것 같다. 필기구의 종류를 떠나 그땐 속 시끄러울 때 뭔가를 끄적이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무엇보다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최고다! 정도로만 여겼던 '필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 다르게 필사를 향한 마음이 더 커졌다. 매주 한 ..

지피지기 2021.07.17

인터뷰 요청

리포터로서 인터뷰이를 마주해 인터뷰 할 때도, 작가로서 인터뷰이의 원고를 받았을 때도 똑같이 느꼈던 감정이 하나 있다. '나도 저런 전문가가 되고 싶다' 어떤 분야에 대해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그게 너무 부러웠다. 얼마나 고민하고, 얼마나 연구를 하고, 얼마나 공부를 했으면 저렇게 막힘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어떤 질문을 해도 명쾌하고, 때론 질문 내용을 넘어 무릎을 탁! 칠 수 있는 깨달음까지 주는 좋은 인터뷰들을 마주할 때면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더랬다. 그래서 취재나 녹음을 충분히 하고도 더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시간을 냈던 적이 꽤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참 부러웠고, 나도 언젠가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서 깊이 있는 인터뷰를 ..

작가세계 2021.07.14

금산은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진주교대에 선별진료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 여파가 여기까지 미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교대에 다니는 학생이 실습 차 시운이 초등학교에 다녀갔고, 그 여파로 교직원 1명과 초등학생 5명이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3, 4학년은 하루 앞서 미리 검사를 받았고, 일요일 오후 1시가 넘어서 갑자기 선생님한테서 문자가 왔다. 1, 2, 5, 6학년도 모두 검사를 받아야된다고. 우리 가족은 외출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바로 차를 돌려 보건소에 도착,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았지만, 학교에 선별진료소가 차려지지 않아서 나머지 학생과 부모들이 보건소 그 땡볕에 줄을 1시간 넘게 서서 검사를 받았다. 엄마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나는 명예사서팀의 단톡방에서 주로 정보를 접했는데, 사서 봉사활동을 하지 ..

육아전쟁 2021.07.12

아이셋 워킹맘의 고군분투 | 8화 "집값 싼 동네 초등학교 보낼 거야?" 내 귀를 의심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집값'만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5년 넘게 우애를 다져온 친구들끼리 꽤 오랜만에 만났다. 둘째가 엉금엉금 기어 다닐 때 문화센터 오감발달 수업을 함께 들은 육아 동기들이었다. 공유할 추억이 많아서인지 부쩍 커버린 아이들 이야기부터 수다 열기가 뜨거웠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끝에 한 가지 주제가 던져졌다. "아이들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는 게 뭘까." 자녀 있는 부모 단 두 명만 모여도 절대 빠질 수 없는 주제다. 사설 교육기관이 얼마나 많이 포진돼 있는지, 산책 나갈 수 있는 공원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 학교들이 고루고루 세워져 있는지 엄마들은 깐깐하게 따진다. 집값이 비싸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 각자의 기준에 따라 좋은 환경이란 모두 다르겠지만..

시민기자 2021.07.09

시간을 거슬러

세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 나는 이랬다. 예쁘게 단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그 큰 공간을 내 목소리로 채웠다. 또각또각 구둣소리를 내며 무대 중앙으로 자리를 옮기던 그 얼마 안되는 걸음들 속에 설렘을 담고 빛나던 순간을 즐겼더랬다.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이런 사진들이 소환될 때마다 나는 '늙음'을 후회한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능력밖의 일인데도 그걸 굳이 원망한다. 이래봤자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인데도 갈망한다. 별글 다음 시즌 주제가 '시간'이라 사진첩을 뒤지다가 발견한 사진이다. 40대가 되어도 50대가 되어도 우아하게 늙고 싶었건만, 어쩌다 나는 '악'을 쓰는 아줌마가 되었나. 젠장. 책상에 앉을 때부터 닭이 아주 세차게 운다. 그렇게 또 날이 밝았다.

지피지기 2021.07.07

진주유치원 학부모회 - 팝업북 만들기

진주 유치원, 집에서 25분 거리의 공립 단설 유치원이다. 시운이는 3년을 다녀서 이미 졸업했고, 지운이가 6세 반에서 2년째 다니고 있다. 출근할 때 남편이 등원을 맡고, 칼퇴 일 땐 하원까지 해오지만 공연이 있어서 바쁘고 야근이 있는 날엔 내가 칠암동까지 다녀오는 편이다. 시운이가 1시 30분에 하원할 때가 있었다. 1년 정도를 방송국 조퇴까지 일삼으며 힘들게 다녔던 적도 있다. 그냥 집 앞에 내려주는 가까운 어린이집이었으면 안했을 고생을 우린(남편도) 사서 했다. 원장 선생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난 3년과 올해를 비교하며 뼈저리게 느꼈다. 지난 원장이 그냥 아무런 의지없이 기계처럼 출근하고 퇴근하는 공무원 자세였다면, 올해 새로 부임한 원장은 정반대다. 너무 적극적이어서 부담스럽다랄까.....

육아전쟁 2021.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