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불편한 마음을 다독이며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내고 있다. 언어폭력을 날리셨던 시어머니와는 대화 한 마디도 섞지 않고 지내고 있고, 상처받은 남편 역시 잠시 무관심으로 일관해본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감정 사이 그 어디쯤에서 적당히 눈치를 보고 적당히 투정도 부리며 오늘도 자라는 중일테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을 많이 겪으면 겪을 수록 철이 빨리드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지쳐버릴까봐. 난 그게 제일 두렵다.
마인트 컨트롤을 굉장히 잘 하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았다.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은 편이라 그런 착각 속에서 지낸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무감각했던 성격상의 특징에 불과했다. 한시라도 자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 속에 살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꾸준히 두드리고 두드려서 내 안에 잠자는 감각들을 깨우는 요즘이다. 시어머님은 포기. 저리 나오신다면, 나는 여기서 포기다. 외로우신 건 그 분이 감당하셔야 할 몫이다.
포기할 건 깔끔하게 포기하고, 해야지! 싶은 건 망설이지 않고 덤비고야 마는 또 다른 내 성격 때문에, 나는 얼마 전 제안받은 라디오 고정 패널을 하기로 약속했다. <라이브 진주>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격주로 책 소개를 맡을 예정이다. 시사성과 시의성을 적절히 포함한 책 소개. 9분짜리니까 원고는 7장에서 8장 정도.
처음 제안을 받고 들었던 생각은 '과연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였다. 연륜있는 지역 작가님들도 계신데, 책과 관련한 전문가도 많으신데, 왜 내게 제안을 했을까? 작가와 꽤 진지한 대화를 주고 받았더니, 내가 구성작가로 있을 때 겪었던 고민 때문이었단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작가라 하더라도, 그 내용을 방송용 언어로, 마이크 혹은 수화기에 대고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숱한 인터뷰이들과 연결해 방송을 해봤지만, 원고는 좋은데 전달력이 좋지 못해서 아쉬웠던 사람도 있고, 원고는 엉망인데 말은 곧잘 해내는 사람, 명성 때문에 섭외했지만 원고도 말도 엉망인 사람까지 제각기 다른 이유들로 제작진에 속을 태우는 경우를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눈에 들어왔던 거다. 원고 구성 잘 알고, 리포터 경력으로 전달력까지 좋으니... 나 같아도 '오호~'하고 반가울 수 밖에.
이틀 정도 고심 끝에 확답을 드렸고, 10월 개편과 동시에 투입되기로 했다. 책을 좀 더 정성스레 읽어야 하는 책임이 생겼고, 간만에 또 방송 원고를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됐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즐거운 작업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해낼 수 있길 나도 나를 응원한다.
어쩌다 답답하고 속상하고 기쁘고 설레는 일이 생기면 '글'을 쓰게 된 걸까? 100일 글 쓰기가 100개 글쓰기로 둔갑했지만, 꾸준히 써온 그 간의 정성에, 시간에 축하를 보낸다. 나만 아는 작은 파티를 하려고 했는데, 둘째가 방학에 들어갔고, 오늘은 시운이가 또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ㅠㅠ (소아과에 다녀간 확진자와 동선과 겹치는 바람에ㅠㅠㅠㅠㅠ) 시운이가 방학을 맞은 일주일 전부터 새벽 기상이 좀처럼 쉽지 않아 100번째 글쓰기가 더 늦어질까봐... 애들 자는 시간에 후딱 써본다. 승훈샘 말대로 100개를 채웠으니, 200개 도전~~ 냐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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