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사유

호구보단 썅년이 낫습니다.

어진백작 2021. 6. 24. 23:59

(# 읽기에 다소 과격한 단어들이 많이 섞여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할 말, 못 할 말 다 주고 받는 채팅창이 있다. 찐친구들 대화창에 느닷없이 이 사진이 올라왔다.

백 : "갑자기?" 라고 말했더니,
A : "글 보자마자 이 방에 올려야겠단 생각이ㅋㅋㅋㅋ"
백 : "우리 모두 썅년이 됩시다, 뭐 그런 차원인가?"
A : "아니지, 우린 호구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 : "마, 썅년이 편하다."

오해는 금물이다. 우리는 한 때, 아주 예쁜 말, 고운 말만 쓰던 리포터였다.

나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백 : "나는 요즘 그렇게(썅년으로) 살고 있어."

모든 게 '허허실실,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모토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지혜롭다 여겼다. '그릇이 크다'라며 칭찬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때론 말도 안되게 사람한테 된통 당했던 적도 있었다. 어떤이의 눈엔 이런 나의 태도가 '만만하다'라고 느껴졌었나 보다.

고백컨대, '좋은 게 좋은 거다' 라고 살았다던 나의 인생관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아주 부끄러운 사실이 깔려 있다. 잘 모르기 때문에 크게 대응하지 않았던 것.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으려 모른척 했던 것의 열에 일곱여덟은 말 그대로 '잘 몰라서' 맞서지 않았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른 척' 해야 할 때가 있다라는 엄마의 조언을 너무 철저하게 따르고 있었는데, 무튼. 그렇게 나는 꽤 오랜 세월을 호구로 살았었다.

내가 썅년으로 살아야겠다고 처음 마음을 먹은 건, mbc에서 실제로 썅년을 만난 후의 일이다. 아무 말도 못하면, 그대로 당하고만 산다는 걸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썅년에겐 썅년의 자세로 썅년답게 대했어야 했다. 아주 큰 교훈을 얻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호되게 썅년 신고식을 치른 후, 이상하게 나는 바뀌기 시작했다. 매사에 사사건건 시비(옳고그름)를 가리게 됐다. 왜? 말이 안되는데 이거? 무슨일이지? 헐. 제 정신 아니구나! 사회적 문제와 이슈에도 하나하나 반응하고,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무엇이 문제이고, 무슨 이유로 지금의 상태까지 오게 됐는지를 파악하게 됐다. (휴. 그동안 너무 헛살았다) 그러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언쟁이 터지고, 때론 내 말이 공격성처럼 전해져서 상대방이 상처를 입는 등의 부수적인 문제들이 발생했다. 아직 너그러운 태도로, 부드러운 말투로써의 훈련은 덜해서 인가보다.

최근에는 누수 관련 업체와 관리사무소, 이케아 설치업체, 인테리어 업자까지 거의 4중고를 동시에 겪느라 나의 분노게이지는 극에 달했었다.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한해서는 적대적인 감정을 추스리지 않을 작정이다. 얼마나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해야 마무리 될 지, 철저하게 논리력을 쌓고 준비자세를 취하고 있다.

남편은 이런 나의 변화에 대해 '관심과 책임'의 차이라고 말한다. 세 아이의 엄마로서, 한 집안의 안주인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된 결과라며, 무게감을 느껴야 한다고. (뭔 소리야. 그럼 내가 여태는 별 책임도 없이 막 살았다는 얘긴가.) 친정엄마는 "이제 너도 거의 10년차 주부 아니니. 큰 살림 맡으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거야." 라고 하던데... 두 사람이 얘기하는 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 중에 하나라고 여기기엔 내 안의 변화가 너무 크다. 그게 낯설어서 요즘은 기분이 좀 그렇다. 선호를 보지 않으면 웃을 일이 잘 없다. 생각할 것이 많아서 머릿속이 바쁘다. 한량처럼 니나노~ 하면서 살던 예전의 내가 그립다.

그래도 호구가 아닌 삶을 살게 된 것이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고민들 끝에 결정 내렸다. 반드시 나는 썅년이 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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