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사유

내 글에 반하기

어진백작 2022. 5. 19. 17:30

역시 조직은 참 조직적이다. 공무원들을 위한 동아리, 독서교육, 무수히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는 것도 놀랐는데 이번엔 글쓰기대회도 있다ㅋ

 

'공직문학상'

 

지난 수상작들을 몇 개 훑어봤다. 역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글자 만지는 일 좀 했다고 그 알량하고 얄팍한 실력으로 나도 한 번?! 이란 생각을 했다가 얼른 접었다. 수백 편의 글 사이에서 수상은 꿈도 안 꾸지만, 만약 뽑힌다면 이게 더 문제다. 수상작들을 엮어서 책으로 만든다. 내 맘대로 쓰지도 못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을 접기 전에 혹시나 쓸거리가 있나 싶어 오랜만에 티스토리에 들어왔다. 썼던 글들을 읽어보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남편이 낼 회사 안가냐며-ㅎ 새벽 한 시를 넘겨버렸다. 너무 재미있는 거다. 분명 내가 쓴 글인데, 내가 이렇게 재미있게 썼나? 너무 잘 썼는데?!?!? 그러고 있었던 거다.

 

여기서 잘 썼다라는 표현은 현재의 기준에 대비한 감상이다. 결론은 요즘은 이런 글을 쓰지 못한다는 쓰라린 현실... 내 손가락이 신접을 이룬 후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며 미친듯이 뛰어 놀았던 때가 티스토리 목록에, 글 위에 녹아있었다. 생각나는대로 마음에서 우러나는대로 울며 웃으며 킥킥 거리며 즐겁게 썼던 그 때가 그리워 잠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요즘엔 왜 이런 글을 못 쓰느냐- 그것이 의문이다. 정책을 녹이고 정해진 답변이 있는 현장엘 가고, 충분히 라뽀를 형성하지 않은 업체나 단체에 가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 그게 조직의 정도(道)라고 하면 이해가 가는가. 진정한 정도(正)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에 가슴통을 부여잡는다.

 

배우는 거야 있겠지. 정보성 글은 도통 쓴 적이 없으니. 게다가 첨삭까지 받는게 어딘데~ 이달에도 기획기사를 네 개나 쓰고 명예기자 글을 두 개나 감수하고 나니 혼이 다 빠질 지경이다. 쓰는게 아니라 글자랑 싸운다. 정면승부. 집에 와서는 자판을 두들길 힘도 남아있지 않다. 글 쓰는 일을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삼으니 왕왕 괴로운 일들이 생긴다. 글 쓰는 스트레스만 있으면 그나마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조직의 쓴 맛까지 보고 있으니 ㅋㅋㅋㅋㅋ 5년 사이 나는 폭삭 늙어 있을게 뻔하다. 복에 겨운 얘기처럼 들리는가? 공무원 됐다고 받은 축하를 다 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갈망한다. 내가 즐거워서 하하호호 나만의 글을 쓸 수 있기를.

그런 글들만 모으고 모아 나만의 책을 만드는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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