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사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어진백작 2022. 2. 25. 01:50
내과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면 진료비 5천원에 끝낼 수 있다. 


확진자 수가 심상치 않더니, 우리집에도 올 것이 왔다.
둘째 어린이집 같은 반에서 확진아동이 나왔고, 일찍 귀가조치를 부탁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퇴근 1시간 전에 받은 전화라 경황이 없었다. 셋째와 함께 가는 연장보육 어린이집에 결석하겠다 연락을 하고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에게 전화해 픽업을 부탁했다. 하필 오늘 라디오 생방도 있고 야근을 신청해놨기에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급한일만 끝내고 부랴부랴 집으로 갔다. 120은 밟았을거다. 자가진단키트로 테스트 해본 결과 '음성'. 그래. 별일이야 있겠어? 자가격리를 두 번이나 해봤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끝나겠지- 싶어 약간은 안도했다.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해맑았고 예뻤다.

아직도 "엄마냄새 좋아"하면서 잠드는 녀석이기에, 그날도 얼굴을 마주하고 꼭 껴안고 잤는데- 새벽녘에 살결에 스친 둘째의 몸이 뜨끈하더라. 열이 나네. 아하... 한숨을 크게 몰아쉬고 일찍 보건소 가서 pcr 받고 출근하려 했는데, 잠에서 깬 아들이 "엄마, 나 목이 아파..."

보건소는 대기줄이 너무 길다고 해서 한일병원으로 향했다. 일단 증상이 있기에 소아과 진료부터 받았다. 의료진의 판단으로 pcr을 추천받을 경우 검사비가 무료다. 목이 붓기 시작하는 단계라 상황을 조금 지켜보자고 하셨고, 검사 후 귀가했다.

세번째 격리, 놀랄 것도 없다
남편과 나는 바빠졌다. 각자 담당계장과 근무조정을 하고 출퇴근 일정을 논의했다. 다음 날 나오는 둘째의 결과에 따라 일주일 정도 업무의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지금이 제일 바쁠 때인데... 2차 교정, 가제본 나오는 일정이 줄줄이인데 나 참. 제발 단순 감기여라. 우연히 참 안 좋은 타이밍에 걸린 '감기'여야 한다 하고 노심초사로 하루를 보냈다.

보통 검사 결과는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온다. 확진이면 전화가 오고, 음성이면 문자로 통보된다. 9시 30분이 넘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어머니, (둘째)가 확진으로 나왔어요."

흐미. 비상이다. 격리라는 걸 할 수가 없는 이제 막 일곱살이 된 아이다. 빼박 줄줄이 확진이겠구나. 냐하~ 나에게도 이런일이. 어제보다 더 바빠진 전화통화들. 팀원들한테 연락을 돌리고 아이들 옷을 입혔다. 둘째를 제외한 밀접접촉자 5명은 pcr 검사 대상자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보건소로 향했다.

너무 이상한 결과, 검사는 제대로 한 걸까?
결과는 모두 음성. 허허허. 이럴 수도 있구나. 아예 마음을 놓고 생활했다. 업무로 간간히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하고 일처리를 했지만 마음은 바쁠 것이 없었다. 이상하게 침착했다. 둘째는 열도 떨어지고 식욕도 회복했다. 세 아이가 너무나 멀쩡하고 나와 남편, 어머님까지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한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다섯명이 한 침대에서 뒹굴며 잠을 자는데 음성이라니. 더구나 접종을 안한 첫째와 막내도.

잠복기가 3, 4일 정도 된다고 하니까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매일 열을 체크하고 상태를 살폈다. 그렇게 어린이집이 가기 싫다고 노래노래하던데 잘됐다. 눈 뜨면 없던 엄마가 며칠 째 회사에 가지 않고 있으니 그게 그렇게 좋았는지 돌아가며 안긴다. 아낌없이 안아주고 뽀뽀하는 건 기본. 색종이 접기 책을 하나 샀는데, 하루에 색종이를 스무장씩은 접는 것 같다. 하자는 대로 다 해주면서 하루 세끼는 남편과 돌아가며 차리고 치우고 이상하게 힘든 거 없이 6일을 보냈다.

격리 3일째였나. 셋째가 콧물과 기침 증상을 보였다. 이제 슬- 잠복기 였던 바이러스가 나타나는구나 하고 pcr 검사를 받았다. 헐. 결과는 음성. 이게 뭐람?! 이쯤되니 둘째가 양성이 진짜 맞았나? 의심 마저 드는 거다. 누구는 숨만 쉬어도 걸리고, 누구는 같이 먹고 자고 해도 안걸리는 이상한 코로나. 이게 날 놀리나... 싶어서 한참 뻥- 쪄 있었더랬다.

격리 일주일째, 마지막 pcr 검사
온 가족이 다시 보건소를 다녀왔다. 내일이면 둘째 자가격리 해제다. 일주일이면 전파력이 사라진다고 잠정 결론을 낸 방역당국의 방침에 따라. 분명 케바케 일텐데, 일주일로 끝내는 이유는 뭘까. '감기는 7일 아니면 일주일이면 낫는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막내가 음성이 나왔으니, 무증상인 남편과 나도 제발 음성이길. 여기서 한 명이라도 확진이 나오면 모든 것이 리셋이다. 다시 격리가 시작된다. 제발, 깔끔하게 여기까지만 하고 딱! 3월에 새 시작하자! 아브라카다브라.

소중했던 일주일, 그러나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실컷 자고 실컷 쉬었다. 아이들과 오랜만에 마음껏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피곤이 누적돼 주말에는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었는데...육아는 체력전이라더니 세 아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는 건 당연하지만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면 어느정도 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일주일이었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고, 시간이 지나면 정리될 것이고, 나는 다시 돌아갈 직장이 있고, 아무도 증상이 없는 것만 해도 어디냐며- 정점을 찍는 코로나 시대에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라 잘 다독였더니, 무탈하게 격리기간이 끝났다. 이상하리만큼 평온해서 좀 불안하긴 하지만ㅋ 만족한다. 나도, 아이들도 제대로 봄방학 즐겼다 치자.

제발, 내일 결과가 모두 '음성' 이길 바라며.
긴긴밤. 오랜만에 써보는 코로나 일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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