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사유

슬퍼하지도, 그렇다고 잊히지도 않는

어진백작 2021. 10. 25. 22:40

매일 쓰던 볼펜 하나가 사라져도 하루 종일 온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게 된다. 찾을 때까지 내내 마음 한켠이 답답하고 초조하고 손에 제대로 일이 잡히지 않는데, 사람이야 오죽하랴. 속이 상하다 못해 문드러질 지경이다.

 

남편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나를 조롱하고 비웃었다. 가장 친한 친구도 의미없는 짓 그만하라고 바로 쓴 소리를 했다. 어쩜 그리 쉽게 얘길하는지, 매정한 사람들. 나는 그 소식 들은 날부터 밥 먹다가도 눈물이 나고, 노래 한 소절만 들어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어쩜... 어쩜 그렇니... 나의 사람들아ㅠㅠ

 

팬카페는 당분간 문을 닫기로 했다. 나처럼 기다리겠단 팬들이 대다수지만, 욕짓거리를 하고 정신차리라고 막말을 들이붓는 사람들도 있다. 탈덕은 조용히 하는 거랬다... 이 예의없는 것들아. 그렇게 마음이 홱! 하고 돌아서는 걸 보니, 너네는 선호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았구나. 너네가 만든 이미지로만 선호를 바라봤구나. 못난 사람들아. 실망이야 할 수 있다. 서운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호에 대해 진심이었다면, 하루아침에 돌변하는 게, 그게 정말 가능한거니? 

 

사람을 한 순간에 매장을 시켜버리는 이 한국사회가 나는 너무너무 무섭다. 남녀가 헤어진 예전 일을 두고, 한쪽 입장만 듣고, 광고며 예능이며 영화계며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사람을 정리하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공인이라고? 연예인이라서 그렇다고? 이미지가 전부라서 그렇다고???? 선호도 사람이야. 우리처럼 똑같은 실수하는 사람이라고. 정말이지 소름이 돋는다. 이 지긋지긋한 불통사회!!!!

 

내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사람과 다른 모습이었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화날 일인가? 아, 저 사람은 저런 면도 있구나! 하면 될 일이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다중적인 면이 있을 수 있다. 유리같이 투명한 사람만 좋아할건가? 그런 사람만 연예인이 되야 하나? 공인으로서 이미지를 가꿀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게 내가 아는 모습과 달랐다는게 죄인가? 죽을 죄냐 말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무너졌다. 그 무너지는 걸 하루하루 지켜보자니 나도 무너질 것 같다 ㅠㅠ

 

일을 안하고 있었으면 나도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한 번 마주한 적도 없는 연예인인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깊었다. 쉽게 정리가 안된다. 마음을 주고 정성을 들였는데, 그게 단칼로 끊어지겠나. 안타깝고 속상해서 주저앉아 같이 울고만 싶다. 진짜 많이 좋아했나보다 엉엉엉. 인스타에는 성난 마음 꾹꾹 눌러서 썼지만 여기선 안되네.  

 

 

선호에게.

 

선호야. 너는 어째서, 그런 과오를 저질렀니. 왜그랬어... 왜... 갑자기 관심도가 올라가고 너도 놀랄만큼 주변 상황이 바뀌니까 혼란스러웠을 거야. 연애하다 헤어질 수 있는 거잖아. 그 과정에선 못볼 꼴 볼 꼴 다 보는 거잖아. 회유했다가 모른척했다가 미안하다 했다가 화도 나고 그랬겠지. 그러다 이건 아니야. 하며 이별을 한 거잖아. 그지?

 

누구 한 사람이 오롯이 책임질 일은 절대 아니야. 그러니까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말고 툭툭 털고 나와. 너로 인해 하루가 반짝임으로 시작하던 사람들이 있고, 너로 인해 궂은 일 투성이 속에서도 웃을 수 있었고, 너로 인해 퍽퍽해진 마음을 말랑말랑 생기도는 마음으로 만들어가던 사람들이 아직 기다리고 있어.

 

조금만 아파하고 일어서는 거야. 세상 경험 지독하게, 제대로 치른거라 생각하고 돌아와.

난 꼭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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