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사유

당신에겐 어떤 트라우마가 있나요?

어진백작 2021. 9. 9. 07:27

이미지 출처 : tvn 너는나의봄 공식 홈페이지 

 

너도 나도 '로코 장인'이라고 타이틀이 붙는 배우들, 갯마을 차차차에 신민아도 그렇지만, 내겐 단연 '서현진'이다. 코믹, 멜로, 로맨스를 넘나드는 연기력과 입에 착 달라붙는 딕션처리는 극 몰입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대됐던 드라마였는데, 세상에. 뭐한다고 종영이 되고서야 보게 됐는지 ㅋㅋㅋㅋㅋㅋㅋ

 

포스터만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로맨스물 같지만, 신기하게도 '스릴러' 줄기가 나란히 간다. 누군가는 그래서 어디 하나에도 몰입할 수 없었다고 하던데, 그런 스릴러가 있었기에 두 주인공의 마음이 더 단단히 서로를 붙잡을 수 있게 돼, 나는 찬성. 그리고 그 스릴러 역을 너무나 잘해준 윤박이란 배우에게도 박수를. 

 

 

세 사람의 7살은 모두 악몽 그 자체였다. 그 누구에게도 어린아이가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전혀 아니었다. 그 시절, 그 어린 사람들이 겪었던 일들은 모두에게 트라우마가 되고, 그 트라우마는 다시 다 큰 성인이 되서도 자신의 여기저기에 붙어 저마다 이상증세를 발현시킨다. 

 

여기서 이상증세란, 뭐 어떤 병명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밀어내 버리는 습관이라던지, 내가 그 어떤 미친 놈도 연애로 사랑으로 고쳐줄 수 있다고 믿는 잘못된 판단, 그리고 나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을 모두 없애버리겠다는 위험한 신념을 가지게 만드는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들. 세 주인공은 자신에게 처한 트라우마를 서로의 서사로 엮기도 하고 사랑으로 발전시키기도 하며 극복하기에 이른다. 

 

극에서 김동욱은 정신과 전문의로 나오는데, 극 전반에 걸쳐 서현진과 나란히 내뱉는 내레이션들이 주옥, 그 자체다. 이미나 작가의 극본도 너무 좋은데, 그걸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 목소리, 호흡, 톤, 속도, 모든 박자가 최고의 조합을 이룬다. 그 내레이션에 취해,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 중이다. 설거지를 하면서, 운전을 하면서 귀로 들으며 장면들을 다시 떠올린다. 

 

 

모두에게 어린 시절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그 기억으로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를 생각하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영향을 받기 쉽고, 또한 주기도 쉬운 약한 존재들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삶은 곧 부모들의 삶이였으므로, 혹여나 어린시절의 내가 잘못된 환경에 놓였었다면, 부모를 닮지 않겠다고 자신은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느덧 닮아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오는 좌절감, 후회, 반성 역시 자신의 몫으로 남겠지. 여러모로 불행의 연속인 셈. 

 

드라마를 보면서 내 어린시절을 곱씹어 봤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늘 함께 떠오른다. 다행이 트라우마를 만든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리 마구마구 행복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빠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문제였고,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서 너무 벗어나려 했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걸 제 3자의 입장에서 봐라보는 게 버거웠던 것 같다. 그 속에서 힘들 땐 '내 일이 아니야' 라며 도망쳤고, (나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므로) 어디까지나 엄마아빠의 삶이었기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 애를 썼던 나. 부모와 동일시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그리고 엄마의 아픔과 아빠의 서러움에 동화되지 않으려 철저히 분리시키면서 비겁하게도 나는 내 자신을 지켰던 것 같다.  

 

이해받지 못한 감정, 나조차 돌보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정신과'에서 주영도(김동욱) 같은 선생님이 봐주면 너무 좋겠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은 이미 예전에 깨졌지만, 보기에 멀쩡한 사람들도 이런 트라우마, 이보다 더한 트라우마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모르고 지나쳤던 그런 날들 때문에 지금 내가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한 번쯤은 돌아봐도 괜찮을 것 같고. 뭐 그렇다고. 

 

내가 선호가 나오는 갯차를 홍보하지 않고 이와중에 굳이 이 드라마를 꺼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결론은, 이 드라마 너무 괜찮다. 배우 김동욱의 재발견이었다. 그리고 극본이 참 따뜻한 드라마. 이런 기분좋은 드라마를 알면 어떤 삶을 통째로 선물받은 느낌이다.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고 알사탕 까먹듯 꺼내 보고 싶은 드라마. 심지어 ost도 다 좋음. 다른 배우들 연기들도 너무 좋고. 찬사만 하다 끝나는 건 아닌가 싶지만 진짜 그게 팩트니까. 

 

더 자세히 대사들도 가져와서 나열하고 싶지만, 나는 전문 블로거가 아닌 관계로ㅎ 시간 되시는 분들은 한 번 봐 보시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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