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

필사하기 좋은 날, 물론 만년필로!

어진백작 2021. 7. 17. 06:54

2018년 5월 어느 날, '필사의 기초'를 쓰신 조경국 작가님의 제안으로 작은 모임이 하나 만들어졌다. 셋째 아이를 가지고 좋은 태교가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페북에서 조작가님 피드를 보고 냅다 신청했던 것인데 마침 방송작가일도 시작했던 터라 필사라는 취미가 꽤나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5개월 정도 꾸준히 썼다. 그 땐 만년필의 매력까진 모를 때여서 모임 회원들이 잉크랑 노트, 만년필 모델 얘기를 할 때 할 말이 없었다. 막 시작했던 작가일로 여유가 없었을 때라 그랬던 것 같다. 필기구의 종류를 떠나 그땐 속 시끄러울 때 뭔가를 끄적이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무엇보다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최고다! 정도로만 여겼던 '필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 다르게 필사를 향한 마음이 더 커졌다. 매주 한 번씩 필사 모임에 참여하고 있고 비록 줌이지만, 비록 수다가 반 이상이지만, 꾸준히 쓰는데 의미를 두고 멤버들을 만난다.

가장 열심히 하는 멤버는 동갑내기 친구 '정민희'. 영아를 키우는 애기엄마다. 나는 저때 시간만 나면 드러눕기 바빴는데, 어쩜 저리도 열심히 쓸까... (진심 존경함ㅋㅋㅋ)

만년필의 세계로 인도해 준 사람 역시 이 친구인데, 민희는 팔을 나란히 붙힌 정도의 큰 필통을 가지고 있다. 열어보면 만년필의 종류가 어마어마. 코로나가 터지기 전, 우리는 소담공방에 모여 함께 만년필을 시필해보고, 주문하고, 잉크를 소분하고 그렇게 놀았었다.

내가 처음 주문해서 손에 쥐었던 만년필은 카웨코 스포츠 버건디 EF촉. 가볍고 자그마해서 휴대하기에 간편한 만년필. 입문용으로도 딱이었다. 만년필이란 것을 손에 익히기 까지 연습했던 용도로만 사용하고, 지금은 그냥 잘 모셔(?)두기만 하고 있다. 지금봐도 앙증맞긴 그지없다ㅎ

만년필 맛을 봤으니, 조금씩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관련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만년필의 신세계에 빠져버렸다. 잉크도 어마어마, 펜 종류도 어마어마, 그게 맞는 질감의 노트까지 어마어마. 무궁무진한 세계...

두 번째 도전한 만년필은 펠리칸 데몬 205 EF촉. 지금도 내 손에 가장 잘 맞는 애정하는 만년필이다. 이름도 각인했고, 1년 전 남동생에게 생일선물로 요구(?)한 만년필. 펠리칸 800이 갖고 싶었지만 가격면에서 좌절함ㅋㅋㅋㅋ이후에는 카웨코 스윙's 올리브 EF촉과 워터맨 뉴헤미스피어 EF 촉.

그러다 최근에 한 번 더, 눈독들이던 만년필을 손에 넣었다. 민희 필통에서 꺼낸 여러 개의 만년필 중 잊을 수 없었던 필감을 느끼게 해준 요녀석.

한 달이나 걸려 손에 넣은 콘클린 에듀라 아발론 리미티트 에디션
건메탈의 저 자태를 보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그리고 손의 무게를 딱 잡아주는 묵직함까지. 오우. 완벽해... 한 달이나 기다린 보람이 있어~ 이 가격에 이정도 필감이면 꿀이지. 게다가 전복이 주는 화려함까지. 조만간 민희와 전복 회동을 하기로. 민희는 우아함이 묻어나는 로즈골드~

하루는 와인마시며 적었는데, 글자가 갈수록 엉망이 되어감

필사는 평생 가져가야 할 좋은 취미라고 확신한다. 쓸 때만큼은 고요해지는 내 마음의 평정을 한 번 느끼고 나면 그 매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쓰는 글귀들이 좋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쓰면서 다시 새기는 행위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자, 그대도 쓸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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