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세계

평생 모르고 싶은 레시피가 있다

어진백작 2021. 7. 3. 00:20

# 제 1회 오뚜기 푸드 에세이 공모전 '사랑상' 당선글입니다. (저작권은 (주) 오뚜기 에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 거렸는지 모르겠다. 세 아이 중에 유독 둘째의 입덧이 심했다.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기도 힘들었다. 평생을 먹는 것에 별 흥미 없이 살았다. 모르는 음식과 안 먹어본 음식은 쉽게 도전하기도 어려웠다. 내 입맛을 꼭 닮은 첫째 아이가 저럴 땐 얼마나 미운지... 엄마는 이런 나를 키워내는 동안 얼마나 답답하고 애가 탔을까. 잘 먹기만 해줘도 최고의 효도인데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둘째는 아들이랬다. 과일만 주구장창 먹었던 첫째와는 전혀 달랐다. 고기가 많이 당겼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몇 점 안되는 소고기를 대령했다. 말로는 아들 딸 절대 차별하지 말자고 했지만, 훗날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 줄 든든한 아들이 생긴다는 생각에 약간은 들떠있는 듯 했다.

 

유독 힘들었던 음식은 다름 아닌 쌀밥이었다. 첫째가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한 두 살배기여서 밥 심으로 일상을 견뎌야 함에도 불구하고 밥을 입에 대지 못하니 그저 죽을 맛이었다. 그럴 땐 삶은 옥수수나 고구마, 아니면 빵 조각으로 허기를 달랬다. 그나마 들어갈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여왕 대접을 받던 첫째 임신 때와 가장 달랐던 건, 육아와 살림에서 벗어 날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배가 고플 땐 자주 서러웠다.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시어머니와 식은 밥 한 그릇을 놓고 신경전을 벌일 정도였다.

 

힘없이 주저앉아 쉬고 있던 어느 날,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뭐 좀 먹었어?”

아니, 별로 생각이 없네.”

엄마가 배를 곪으면 안 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그 어떤 누군가도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봐 왔던 적이 없던 최근이었다. 남편은 첫째 딸 재롱과 육아에 몰입하느라 날 챙길 겨를이 없었고, 늘 아들이 우선인 시어머니도 딱히 날 보살피지 않으셨다. 둘째부턴 내가 나를 챙겨야했다. 구세주 같은 엄마의 연락 한 통에 모든 상념을 접은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여보, 나 친정에 좀 다녀올게.”

? 갑자기?”

엄마가 맛있는 거 해주겠데.”

얼마나 있다 오려고?”

살 좀 찌워서 돌아올게. 시운이 단도리 잘 하고 있어.”

 

첫째 때는 몸무게가 15kg 넘게 늘었는데, 둘째 땐 6kg 늘어난 게 고작이었으니안 그래도 얼굴이 핼쑥해서 딱해하던 남편이었다. 고민 하나 없이 정한 결정, 통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았다. 입을 앙 다물고 있는 날 보면 알 수 있었다고 했다.

 

1시간 30분 정도 되는 거리를 기분 좋게 달려간 친정은 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말없이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딸을 본 엄마아빠는 놀랄 새도 없이 짐을 받고 보일러를 켰다.

 

얘기를 하고 오지 그랬어. 집에 뭐가 없는데...”

 

엄마 아빠가 있으면 됐지, 더 이상 뭐가 더 필요할까. 발을 동동 구르며 냉장고를 뒤적이던 엄마는 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습관처럼 물었다.

 

엄마, 그거 있잖아. 그거.”

, ? 뭐가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게 생겼어?”

그거 있잖아. 그거. ... 뭐지? 김치 넣고 떡국 떡 넣고 콩나물 넣고 끓인 거.”

밥 국?!”

! 맞아. 그거!”

 

우리 집, 그러니까 엄마아빠 집에 살 때 한 번씩 먹던 엄마 표 김치국밥. 나는 아무리 봐도 국밥 같은데, 엄마 아빠는 자꾸 밥 국이라고 말해서 이상했던 그 거. 국밥치곤 국물이 많지 않고, 김치랑 콩나물이 아삭한 식감을 잃기 직전에 쫄깃한 떡국 떡과 걸쭉한 국물을 함께 먹는 것이 포인트였던 그 거. 밥알이 퍼져서 죽 같기도 한데, 죽이라고 하기엔 김치 조각이 적당히 크고, 묵은 김치의 시큼한 맛이 제일 좋았던 그 거. 내겐 엄마 품만큼이나 익숙한 그 밥 국’.

잠옷 차림으로 주방에서 뚝딱뚝딱 밥 국을 끓이는 엄마의 뒷모습이 좋아서 편한 소파를 두고 식탁 의자에 앉아 한참을 바라봤다. 이 세상 모든 딸들이 느끼고 있는 변하지 않는 진리, ‘친정은 천국입니다가 가슴팍에 와서 꽂히는 순간이었다.

 

연기가 폴폴. 국그릇이 아니라 대접 그릇에 가득 내어오는 울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큰 손 이다. 뜨끈하고 얼큰한 게 입덧이 뭐였는지 까먹을 정도로 술술 잘도 넘어갔다.

 

내게 있어 가장 훌륭한 입덧 해소 음식이었던 엄마 표 밥 국’. 그걸 뱃속부터 먹고 자란 아이들이 셋이나 될 때까지 나는 엄마에게 요리법을 물어보지 않았다.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는 내게 엄마가 물었다.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줘?”

아니.”

? 맛이 없어?”

아니. 먹고 싶을 때마다 오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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