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세계

고인물

어진백작 2021. 8. 16. 06:24

 

원고 폴더가 보이지 않을 때, 공용메일 비밀번호를 알 만한 다른 작가들에게 연락을 돌리면서 알게된 사실이 하나있다. 

나를 괴롭혔던, 내 후임 자리에 왔던 스물 두 살의 어린 보조 작가에게 언어폭력 및 갑질행위와 비인간적인 행동을 일삼은 모 작가와 관련된 후일담이었다. 

 

모 작가의 그런 역겨운 행위들로 피해를 입은 것은 방송국을 떠나게 된 당사자 뿐만이 아니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그 아픔을 고스란히 품은 어린 보조작가도 함께 방송국에서 내팽게쳐졌기 때문이다. 나는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어린 나이로선 절대 감당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오로지 깡으로 버틴 어린 작가는 문제를 일으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사회초년생인데... 예쁨과 격려만 받아도 모자랄 그 나이에... 자신에게 몰려오는 손가락질을 어떻게 버텨냈을지, 안타깝고 속상해서 견딜 수가 없다. 

 

만행을 저지른 모 작가가 방송국을 나가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하나로 어린 작가는 어마어마한 눈총과 함께, 아주아주 경력이 많은 한 프리랜서한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단다. 그 사람은 다짜고짜 어린작가에게 막말을 퍼부었다고.

 

"어디 새파랗게 어린게 들어와서는, 감히 프리랜서의 질서를 어지럽혀? 선배가 혼내면 혼내는대로 잘 하면 될 것이지, 이런 분란을 일으켜??? 어??? 어디서 배워먹은 짓이야?" 

 

나도 정확히 당사자에게 들은 내용이 아니지만, 대충 저런 얘기였다고 한다. 

 

작가의 세계란 그런거다. 선배는 후배에게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설사 그게 폭언이었을지라도, 후배는 마땅히 견뎌내야 한다는 얘기. 이 얘기를 전해준 사람이 나한테 한 마디 덧붙였다. 

 

"작가님도 말 조심해야해. 여긴 고인물 천지라고. 내가 다르게 생각한다고 해서 절대 그게 먹힐리가 없다고."

 

고인물이 대수야? 수십년을 그래왔다고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야해? 우린 인격이란 게 없어? 지네들은 뭐가 잘나서 그딴 잔소린데? 다 우리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고? 다 우리를 위하는 마음이었다고???? 웃기지마. 너네들이 받아왔던, 그 엿같은 시간들을 고스란히 스트레스 풀듯 뱉어내는 거잖아. 자신이 학습당한대로 후배에게 하는 것이 과연 전통일까? 잘못된 걸 잘못된 거라 판단하지 못하고 '당연'하다고 배운 너희들이 등신머저리야. 씨발.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님들도 당시의 내 고충을 들어줄 때 속으로 저런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쯧쯧쯧. 불쌍하지만 지혜야. 작가세계는 그런 거야. 여기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그 정도는 마음먹고 견뎌내야지.'

 

뭔, 거지같은 소리들인지.  

 

 

'작가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뷰 요청  (0) 2021.07.14
평생 모르고 싶은 레시피가 있다  (2) 2021.07.03
오마이뉴스에 대한 편견  (2) 2021.06.05
별글 줌 회의  (4) 2021.05.31
오뚜기 푸드 에세이 공모전 당선  (10) 2021.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