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사유

한껏 꾸미고 외출을 했다.

어진백작 2021. 6. 3. 06:54

 

어플의 힘을 좀 빌렸다

 

 오랜만에 외출이었다. 화장을 하고 원피스를 입고 여름 쟈켓을 걸쳤다. 이렇게 한껏 멋을 낸 이유가 있다. 분명 데이트다. 남편은 아니다. 그럼 누굴까. 

오른쪽에 서 있는 김예린 작가와 앉아있는 김태희 작가, 나는 이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든다.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도 별글 작가 엠티를 빠졌던 아쉬움을 감당하지 못한 나와 김예린(별글 총괄작가)는 중간 지점인 마산에서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점심으로 초밥 집은 내가 골랐고, 우린 창동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며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글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글 속에 녹아있기 때문일거다. 우린 총 8편의 글을 주고 받았고, 3번의 온라인 회의로 얼굴은 본 게 다 였지만, 그래도 충분했다. 서로를 끌어 당기기에 막힘이 없었다. 예린작가는 나랑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했고, 그 의견에 적극 동의했다. 

 

 처음 대면했음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예전부터 알아왔던 사람처럼 개인사를 나누고 의견을 주고 받았다. 비슷한 점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한 5시간 쯤 데이트를 하고 느낀 점, 나와 비슷한 점을 나열해 본다. 

 

 

1. 기자경험이 있는 예린 작가와 리포터 경험이 있는 나는 사람을 대하는 거에 좀 더 수월하고 그와 동시에 거절 당하는 것에도 익숙한 타입이라는 것. 그리고 둘 다 다시는 기자와 리포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 아마도 같은 이유일 거라는 것.

 

2. 우리 둘 다 글 욕심이 많다는 것. 쓰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써야 하고, 누구보다 잘 쓰고 싶어한다는 것. 비슷한 시기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 같은 예감. 

 

3. 아이들을 사랑하면서도 언제든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하늘을 찌를만큼 간절하다는 것. 남편을 사랑하지만 다시 태어나면 절대 '결혼' 같은 건 안하고 싶다는 것.

 

4. 어마어마하게 '하고재비' 라는 것. 

 

 

 예린 작가는 내게 끊임없이 얘기했다.

 

'이런 거 어때요?' / '이런 거 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 '이런 건요?/ '이것 도요!' 

 

 굳이 나이 때문만은 아닐진데, (예린작가는 88년 생. 나와는 5살 차이) 에너지 차원에선 분명 내가 한 수 아래였다. 그의 열정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엄청 소극적인 사람이었고, 이런 저런 제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냥 대단했다. 나도 한 열정 하는 사람인데, 나보다 더 한 사람이 있네......ㅋㅋㅋㅋㅋㅋ 그런 두 사람이 만났으니 조만간 사고를 칠 게 뻔했다.

 

 

 먼저 주차장을 빠져 나가는 예린 작가는 차 창문을 주욱 내려 배웅하는 나를 보고 한 마디를 더 던진다. 

 

"제가 한 얘기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그냥 한 번 생각만 해보세요!"

 

 기어이 하고 만, 저 한 마디에 진주를 오는 내내 내 머릿속은 바빴다. 

 

 

 피곤했나보다.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이 든 나는 새벽 네시에 습관처럼 눈이 번쩍 떠졌고, 예린 작가의 예리한 눈빛에 감시 당하듯 책상 앞에 앉았다. 문화 기획자라...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원 사업에 어울릴만한 기획이라... 당장 10일까지 기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통과해야 한다. 같이 사업 따내서 교육 받고 협업 하자는 게 예린 작가의 제안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열해봤다. 오오오. 떠올랐다. 그리고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사회적 문제 중 하나인 '이것'을 문화적 관점에서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메타버스... Lifelogging... two channel로... 

 

"작가님, 뭔가가 떠올랐어요! 기획서 작성해볼께요!!"

 

 뭔가 또 부시럭부시럭, 움직임이 잦은 나를 남편이 불편하게 쳐다본다...

 

 '저 사람이 뭘 또 하려고 저러지...' 라는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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