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사유

이사는 했는데 ep.2

어진백작 2021. 5. 23. 01:12

옷 서랍장 정리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이삿짐 정리가 마무리 되고 있다. 뜻하지 않게 '자가격리'라는 시간이 주어지면서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보는 와중에도 막바지 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엔 주방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내가 꿈꿨던 주방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방하면 '한*'이란 브랜드를 떠올린다. 홈쇼핑에서 방송도 많이하고 플래너를 끼고 상담만 하고 나면 모든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주방을 설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이케아' 주방을 선택했다. 남편은 '이케아' 브랜드에 충성도가 꽤 높은 편인데, 잘 몰랐던 나도 실제로 몇 개의 가구를 사서 써보니까 확실히 다르단 걸 알게 됐다. 순수 원목이 아닌 경우에야 새 가구를 들이면 냄새가 아주 심한데, 이케아는 원자재를 인체에 무해한 E0 등급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본드 냄새도 잘 안나면서 조립하는 과정도 안내서만 제대로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가성비 면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새로 이사온 집은 넓은 평수만큼 주방도 널찍했다. 상부장 하부장을 모두 합쳐도 어마어마한데, 팬트리가 두 동이나 있어서 '아, 이 정도 수납력이면 상부장을 안해도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자, 상부장이 없으려면 하부장이 튼실해야 무거운 냄비들, 그릇들, 후라이팬 등등 식기도구를 다 수납할 수 있을텐데. 과연 이케아는 그게 가능할 것인가?! 

 

가능하다. 하부장 서랍에 달리는 경첩 때문인데, 최고급 사양으로 불리는 '블룸'이라는 경첩이 사용된다. 한*에서 이 경첩을 달려면 주방 등급을 몇 등급이나 올려야 한다고 한다. 이케아 500만원이면, 한*은 천만원을 들여야 한다는 거다. 지금도 서랍을 열었다 닫으면 느낄 수 있는 그 스무스함의 만족도란... 암튼. 이케아 주방은 기본이 '블룸' 경첩이라는 말씀. 

 

그런데. 

 

문제는 선택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란 건 정말 1도 없다는 사실. 스타일을 결정하는데만 폭풍 검색 일주일을 그냥 흘려보냈다. 실제로 이케아 동부산점을 방문해 주방 견적 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거기서부터 막히기 시작. 뭘 좀 만지고 놀 줄 아는 남편도 그 큰 주방을 모두 설치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고, 더구나 우리에겐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존 집에 들어올 사람이 빨리 나가줘야 올리모델링을 한다고 거의 쫓겨나다시피 이사를 서둘렀기 때문)

 

주방이 철거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측이 정확할 리도 없고, 주방만 이케아지, 싱크대 상판, 수전, 싱크대 볼, 후드, 손잡이까지 죄다 검색과 선택은 내몫이였다. 다시 하라고 해도 못할 시간들이었다. 3개월 정도 비워진 집에 세월아네월아 할 여유가 있으면 몰라도. 

 

그래서, 실측 및 디자인, 설치까지 다 해줄 수 있는 협력업체를 찾자! 까지 갔다. 광명점은 이 팀이 다 꾸려져 있지만, 아직 동부산점에는 없는 관계로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여긴 부산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경남 진주가 아닌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다. 

 

겨우겨우 수소문해서 알게 된 협력업체는 '이케아 풀***' 출장비가 더해지긴 했지만 진주까지 와줄 수 있고 내가 생각했던 모든 과정을 도맡아 해준다니 완전 땡큐지. 부랴부랴 일정을 잡고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답지 않게 손에는 굵직한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고, 얄팍한 가디건에 신발은 낮은 슬립온. 대표라고 했다. 실측 및 상담비로만 15만원을 불렀고, 진행절차를 상세히 브리핑 해주더라. 상담시간만 2시간이 걸렸다. 그저 여기까지 와준 것만 해도 고마웠다. 그리고 투명한 절차를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해서 보여줘 굉장히 신뢰가 갔다. 인테리어 과정에서 이런 정직함은 보기 드물다 생각이 들 정도로 설명이 디테일했고 성실해보였다.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해드립니다. 저희만 믿으세요!"가 이 업체의 모토였다. 

 

원래 잡은 일정대로라면 모든 인테리어가 마무리 되고 난 후 마지막으로 주방 설치가 되는 순서였다. 그런데, 인테리어 과정에서 자꾸 지연되고 누수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일정이 꼬이게 됐다. 결국 주방이 들어오는 날엔 가장 많은 인부들이 이 집에서 북적이는 상태까지 가버렸다. 그날 인부 수만 12명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케아 풀***' 사장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하는 작업에 있어서 그 어떤 방해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철학?! 신념?! 이 있었다. 30일 입주인데, 보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 늦출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랫층에서는 인테리어 때문에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지, 자신의 작품이라고 여기는 공간에 타일 본드가 튄다고 난리. 심지어 주방 타일은 붙여지지 않은 상태라고 난리. 자기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졌을 때, 마지막으로 짜잔! 하면서 나타나 자신의 작품(이케아주방)이 빛나는 결정체로 마무리되길 원했던 건데, 모든 게 어수선한 상황 자체를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거다. 

 

심지어 내가 싱크볼을 800짜리가 아닌 860 짜리로 변경하면서 하부장 일부가 밀려났는데, 밀려난 공간에 마룻바닥이 비게 된 것을 가지고 나몰라라 하는 게 아닌가. 싱크볼을 860으로 주문하기 전에 '고객님, 지금 현재 사이즈론 싱크볼 800이상은 곤란합니다. 그러니, 잘 선택해주세요' 라는 언급을 미리 했었어야지. 선택하고 주문해서 그 큰 싱크볼이 집에 도착해 있는데 그제야 기존 자리에서 밀려난다고 하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럼, 어떻게 하면 되죠? / 아, 그럼 현장에서 상황 보고 차후 대책을 논의해보시죠. 라고 하길래 나는 그 업체에서 알아서 해줄 줄 알았지. 근데 인테리어 업자한테 부탁하라고 해놓고 사라져 버리는 건 무슨 짓이지?! 

 

빡치는 지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인테리어 업자도 곤란. 나도 곤란. 근데 자기 작업은 우아해야 하고. '고객님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시는 부분을 저희는 다 해결해 드립니다' 라고 했으면서! 그 사이 자잘한 문제들도 몇 가지 있었더랬다. 

 

 

1. 매립형 콘센트 주문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는데, 그 미숙함을 가지고 '그 고객 참 이상하다, 왜 그런다냐?' 라는 말을 상판 설치해주는 업자한테 말함. (업자가 스피커폰으로 받아서 내가 그걸 들어버림) 뒤에서 고객 욕한 거나 마찬가지.

 

2. 싱크볼 설치 중 보일러 분배기 높이를 미리 측정해 가지 않아 배관통 설치가 완료 안 됨. 그건 실측 상의 문제인데, 나보고 자기가 말한 쿠팡에서 싱크볼을 안샀다고 뭐라 함. (자기가 말한 쿠팡에서 샀으면 교환하는 과정이 더 원활했을 거라며) 말이가 빵구가. 고객이 직접 구매하는 과정에서 업체를 지정한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됨.

 

3. 계산서 계산도 실수하고, 나중엔 실측 잘못해서 디자인 변경된 것을 두고 (안그래도 큰 돈 나가는데) 추가 금액 발생하게 만듦. 

 

4. 통화가 안되면, 문자로라도 왜 전화를 했었는지 남기던가. 자기만 바쁘나 어디. 부재 중 남겨놓고 하루종일 기다리게 만들고.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했으면 내가 받을 때까지 해야지. 궁금해서 전화나 하게 만들고 말이야. 돈 다 받았으니 목마른 사람이 우물파라 이거지. 

 

추가)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 싫다. 그런데 자기 자랑 엄청한다. 자신이 잘나서 이런 것도 한다는 경력을 묻지도 않았는데 어필한다. 한 번이면 족하다. 두 번 세 번은 횡포다. '제가 이런 사람이예요' 안물안궁!!!!!!

 

 

이쁘긴 완전 이쁨 ㅠ 

 

우여곡절 끝에 문짝 한 개와 마감면 한쪽은 자재가 한국에 들어온 게 없어서 휑하게 비워져 있다. 이케아 측에 따르면 7, 8월은 돼야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아는 업체가 거의 99% 동일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고 3주 안에 마무리 하고 싶으면 그 제품으로 하면 된다고 어필하는데. "이케아 제품이 아닌데, 어떻게 믿어요?" 라고 말하니 삐졌다. 자기한테 그정도의 신뢰가 없다니 섭섭하다고 한다. "아! 그래요?!?!?! 정말요?!?!?! 해주세요!!" 라는 대답을 원했었나봐. 여태 그런 고객들만 만났었나보지. 다른 고객들은 얼마나 말로 홀려놨으면.... 

 

'아쉬우니 한다. 내가 못하니까 너희 업체로 할께.' 요걸 빌미로 영업도 엄청 하는 것 같다. 상판도 우드로 할지, 인조 대리석으로 할지 결정을 못한 상태에서 (내가 바보다) 자기 거래처인 LG 하이막스 제품을 추천해서 하게 됐다. 지금은 만족하지만 그런 고객의 빈틈을 파고들어 영업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잘못 본 거라면 할 말 없지만 말이다. 

 

이 업체를 알고 지금까지 두 달이 넘게 연락을 주고 받았다. 좋게 후기 써 달라고 하던데, 아니. 절대! 나는 있는 그대로 쓸 것이고, 그 후기는 널리널리 퍼뜨릴 것이다. 이케아 주방 원하는 사람들은 다 보게 만들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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