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

어찌 지나갔나 나의 일주일은 EP.3

어진백작 2021. 3. 9. 07:11

 

내가 왜 이렇게 긴 설명을 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위선자. 그러지도 못할거면서 그런척은!!!!'

 

며칠간 내가 나한테 퍼부은 욕이다. 에잇! 내가 너무 한심해서,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던 요 며칠이었다. 두번째 기사에서도 밝힌 적이 있는 10년 만에 연락이 온 한 선배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교원' 지부장 격을 맡고 있는 선배가 어느 날 느닷없이 연락이 왔다. 리포터 시절, 선후배 관계로 잘 지내왔던 우리는 속 깊은 얘기를 꽤 잘 터놓는 사이였다. 선배가 일을 그만두면서 한동안 끊겼던 연락이 다시 닿은 건, 2월 초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안부를 전하는 와중에 시운이 이야기가 나왔고, 시운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좋은 책을 주겠다는 연락으로 마무리지었다. 받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다. 옛정은 반가운 인사로 끝냈어야 했다. 공짜로 받은 책은 그만큼의 댓가를 치러야 끝이 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선배는 우리집에 와서 차 한 잔을 하고 있었다. 선배 가방이 터질듯이 자료를 넣어 들고 왔음에도 내 얼굴을 보러 왔다 했다. 부산에서 진주까지 오겠다고 한 걸 거절못한데는 나의 호기로움도 있었다. 그 어떤 얘기를 던져와도 영업에는 휘둘리지 않겠다고,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자만했었다. 그런데 왠 걸. 시운이의 성향테스트(?) 결과를 듣는 과정에서 나는 몇 번이고 엄마로서 무너졌고, 그걸 애써 들키지 않으려 언성이 높아졌다. 

 

서울대학교 연구진이 참여했다고 했고, 학교에서도 이런 테스트를 하는데, 선택하고 조인하는 업체가 '교원' 단 한 곳밖에 없다고, 그만큼 공신력이 있는 테스트라고 설명했다. 테스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철저히 배제됐다. 엄마가 옆에 있으면 아이가 눈치를 본다는 게 이유였다. 잠시 자리를 비켜줬고, 그 사이 굉장히 많은 질문과 대답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초등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테스트지였다. 사실 그것부터가 말이 안됐다. 시운이는 여타 다른 1학년들보다 거의 1년이 늦는 아이다. 그런데 2학년들도 모르는 상식과 지식들도 질문지에 나열돼 있었다. 선배는 이런 지식들을 모르는 것은 상관이 없다고 했다. 다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그 성향을 파악하는 질문지라고 했다. 

 

아직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것도 힘든 아이를 붙잡고 수많은 항목들을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과연 정확한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었다. 오늘 처음보는 어른과 그 많은 대화들을 이어나가는데 시운이의 집중력이 따라줬을까? 내가 아는 시운이는 어느 정도였을지 나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배는 큰 일이 났다는 표정으로 한 항목을 짚으며 내게 말했다. 

 

"이것봐바. '나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라는 항목이 '2'야. 0도 있고 5도 있는데 '2'라고 했어."

 

아직 주는 거라곤 '사랑'밖에 없는 내게 선배가 내놓는 항목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순간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엄마 아빠 사랑없이는 저런 사랑스러움을 가질 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대답했다고?!?!?!?!?!?!?!??!??!?!?!?!?!?!?!?! 제대로 공략 당한 것일까? 아니면 진짜 시운이가 진짜 그렇게 느끼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확실히 부정했다. 그 때부터 내 목소리가 높아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선배는 이어서 연타를 날렸다. 내 교육관에 대해 약간은 흥분해서 말하고 있는 내게, 너는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그런 전략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 말이 이렇게 다가왔다.

 

'이런 정보도 없이 니가 시운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애?'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전략이란 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시운이가 잘 해내리란 '믿음' 밖에 없는 못난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선배는 너무 이상적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론 말이 안된다고 반박해 왔다. 시운이가 잘 되길 바란다면 그런 생각은 위험하다고까지 말했다. 

 

내게도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하는데, 선배는 결과가 나오는데 하루 이틀이면 된다고 다음 주에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분명 그 결과지에 대한 이야기로 2차 공격을 할게 뻔했다. 나는 그 공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분석이야 그럴듯하게 해내겠지, 그런데 질문자가 전문가가 아니었잖아? 1. 2. 3. 4. 5를 체크하는 선배에 대한 신뢰가 내겐 없었다. 그 사람은 교육자가 아니라 영업가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아이들을 재우면서 잠이 들 것 같았다. 공연 때문에 늦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놨다. 잠들어있으면 꼭 깨워달라고. 그리고 일어나서 말로 남편을 흠씬 두들겨 팼다.

 

"학습지도 안된다, 책도 보기 싫어하면 보여주지 말라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하지 말라. 아무것도 안해도 잘 클거라고 믿는 당신의 전략은 무엇이냐. 아무런 계획도 없이 놔뒀다가, 나중에 집에서 뭐했냐고 나한테 따지면 죽여(내가 요즘 정말 남편을 죽이고 싶나보다ㅋ3월 2일 후폭풍이 여기까지 이어졌다) 버릴거야!"

 

내가 스스로를 위선자 라고 말한 것은 이런 스트레스를 겪을 거면서 아주 느긋한 척 두번째 기사를 발행했기 때문이다. 부끄러웠다. 나는 나를 속였다. 속은 내가 짜증나서 화가 났다. 평온하지 못한 내가 힘들었다. 그렇게 지옥같이 요 며칠을 지냈다. 여기 저기 있었던 이야기를 전하며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위로를 받았다. 결과지를 전하기 위한 선배의 연락을 거두절미하고 저런 카톡을 보내고 나서야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하교를 앞둔 시운이 마중을 나갔다. 

 

시운이는 어제 처음으로 혼자 등교를 했다. 무사히 하교를 하는 시운이를 끌어 안으면서 힐링했다. 그렇게 이제 막 초보 초등생 학부모 딱지를 떼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