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

막내야 미안하다

어진백작 2020. 12. 3. 02:05

셋째 채운이의 콧물이 석달 째 멎질 않고 있다. 

지난 주,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 선생님의 말씀. 

 

"먹는 약이 듣질 않네요. 입원해서 약물치료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입원이란 말에 덜컥. 하지만 내 눈은 달력부터 확인하고 있었다. 

 

'앞으로 2주는 더 작품이 나가야 하는데... 어쩌지...'

 

모든 걸 제쳐두고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켜야 했던 게 옳은 선택이었지만,

결국, 일주일치의 약을 더 받아오고야 말았다. 

 

워킹맘이 부딪쳐야 할 현실 중 첫번째는, '항상 1순위는 아이여야 한다'는 강박과 싸우는 일이다.

물론, 당장 피를 철철 흘릴만큼 심각한 상황에선 앞뒤 상관없이 건강이 우선이겠지만

그런 마음조차 가질 수 없는 환경들이 즐비하게 놓여져 있다.

꼭, 일과 엄마 중 하나를 선택 해야할 순간이 여러번 닥쳐온다는 얘기다.   

 

그럴 때마다 항상 '난 좋은 엄마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잘 하고 있는지 내 역량을 테스트 한다. 

자신이 없을 땐 한없이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여유가 좀 있을 땐 뿌듯함도 가져본다.

왔다갔다 그날 기분에 따라 자신을 채찍질하거나 위로를 일삼다가

결국 마지막 선택은 아이를 후순위로 두는, 나는 못난 엄마다. (고해성사가 되고 있는 듯한 글이다)

 

다행이 콧물이 흐르고 기침을 하는 동안 막내는 기운 한 번 잃은 적이 없다. 

잘먹고, 잘자고, 잘놀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렇게 버텨주는 것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일이라 스스로 느끼고 있는 걸까.

다른 여느 집의 막내들은 후한 사랑을 아낌없이 받고 있다는데...

 

잠들기 전, 언니 오빠가 한쪽씩 차지한 엄마 곁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혼자 덩그러니 잠들어도 야무지게 베개 위에서 이불을 턱밑까지 덮고 자는 막내다. 

어제는 쉬야를 해서 기저귀가 젖으니까 혼자서 새 기저귀를 갈아입는 신공까지 보였다. 

 

기특하다고 칭찬해야 맞는데, 괜히 내가 그렇게 만든 건 아닌가... 하고 

또 자책부터 시작하는 나는 못난 워킹맘. 

 

2년 전, 전 직장에서 어떤 국장님이 하셨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이고, 만다꼬 그 어린 아이를 두고 여길 왔노. 엄마 꿈, 그게 뭐시라꼬."

 

일을 놓치 않으려 발버둥 치는 내 시야로, 

막내가 걸어 들어온다.

누워서 옹알이 하던 막내가 이제는 성큼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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