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

10년 만에 건강검진

어진백작 2020. 12. 16. 16:18

 

서른 살 맞은 기념으로 큰 돈 주고 건강검진한 이후로 거의 10년 만에 건강검진이다. 직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궁경부암 검사를 제외하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한 적이 없었다. 내 건강에 소홀했다기 보다, 세 번의 출산으로 내 건강을 조금씩 확인하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셋째가 태어나고 2년 정도 흘렀으니, 이제는 좀 해야되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남편이 한다길래 얼른 같이 신청해버렸다. 

 

2018년부터 3개월 씩 3번에 걸쳐 한방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다. 실제로 효과도 톡톡히 봤고, 흔하게 발생한다는 부작용도 거의 겪지 않았다. 운동을 만병통치약 쯤으로 아는, 그것도 꼭 수영이어야 한다고 우기는 남편은 이상한 걸로 살을 뺀다고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잔소리를 해대서, 그래 이 때다! "내가 건강검진 결과에서 간이 안좋다거나 조금이라도 이상증세가 나타나면 다신 안먹을께!" 라고 내지르고 그 결과를 숨죽이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거의 10일 만에 결과지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얼른 찾으러 갔다. 결과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후훗. 빈혈이 있다는 것 말고는 내장 비만도 없고 단지, 키에 비해 몸무게가 좀 나간다는 것?! 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신체나이도 37살. 운동하나 못하고도 이 정도면 훌륭한 결과가 아닌가?! 라고 자신만만해 하는 중이다. 

 

이 결과를 방송국 팀원들과 공유했더니 한작가가 "얘, 정말 미스테리네." 라고 하는게 아닌가. 그게 무슨의미예요?! 작가님?! 물었더니, 

 

"아니... 지난 번 '토지' 만들때 보석씨랑 트러블 있을 때도 그렇고, '안전신문고'로 나한테 열나 깨지기도 했지, 팀장이 말끝마다 시비걸지... 집에 가면 애가 셋이지, 시어머니랑 같이 살지, 남편과도 최근에 뭐 사이가 좀 그랬지... 나라면 스트레스로 회사 100번은 더 그만뒀고, 몸이 고장이 나도 어디 하나쯤은 이상이 있어야하는데 뭔데. 자기. 진짜 최고네."

 

나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를 어디에서 받아서 어떻게 풀고 있는 건가?? 곰곰히 생각해봤다.

 

"좀 무뎌서 그럴거예요. 100개의 화살이 날라오면, 100개 화살 다 맞는 사람이 있잖아요. 근데 전 50개쯤 받는 거 같아요. 그 차이 아닐까요??" 

 

예전에 남동생이랑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아니, 누나는 어쩜 그렇게 머리만 대면 잠이 들어?! 잠이 와?! 생각할 게 그렇게 없어?!??!?!"

"아니, 누웠으면 잠을 자야지, 왜 누워서까지 생각을 해?!"

"에이그... 그러니까 발전이 없지. 쯧쯧쯧"

 

한 대 쥐어박고 세상 편하게 잠이 들었던 그날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세상을 좀 단순하게 살면, 크게 아파할 필요도, 크게 슬퍼할 일도 없이 잘 지나갈 수 있다. 그게 내가 가진 재주 중에 하나다. '발전이 없다'는 말에는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쿵'하고 심적으로 충격을 받았지만, 어떤 상황에 직면해도 도전을 아끼지 않고 몇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내 자신을 보면 그 말을 온몸으로 부정하고 있으니까 됐다.

 

어쨌든, 그런 내 자신에 만족해가며 살고 있다. 건강검진 결과도 꽤 만족스럽다. 운동을 더 하면 좋은데, 시간을 아끼는 방법으로 다이어트 약을 한 번 더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심히 고민  중인데... 글쎄. 남편이 동의를 할까 모르겠네. 하루종일 뒹굴거리는 휴식을 맛본 오늘 하루. 자~ 이제 애들 하원시키러 가볼까.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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