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사유

내 것이 없는 내 집

어진백작 2021. 4. 4. 02:11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설거지를 하다가 언제 깨졌는지도 모를 유리반찬통에 슥- 베였다. 베이는 느낌을 정확히 알아차릴 정도여서 상처의 길이도 깊이도 눈으로 확인되었다. 피가 제법 나길래 밴드를 찾았는데, 제대로 된 밴드가 없었다. 급한대로 찾은 것이 화려한 공룡메카드 밴드. 쯧쯧쯧. 내 것이 없는 우리 집이라니. 일반 밴드 조차 갖춰지지 않은 집이라니... 부지런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진다. 

 

얼마 전 일이다. 간단한 장을 보러 가기 위해 외출 후 남편과 함께 마트로 이동하던 중, 내가 물었다.

 

"집에 마늘 있어?"

"있을껄? 아니다. 있다. 그런데, 이건 내가 물어야 될 질문 아냐?"

"누가 묻는가가 여기서 왜 중요해?"

"아니... 내가 알고 있고 당신은 모르고 있는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렇지..."

 

냉장고 속을 훤히 꽤 뚫고 있는 남편이기에 물어본 것인데, 그게 왜 남녀의 차이고 아내와 남편의 차이로 넘어가는지 몰라서 되물었었다. 트랜드한 젠더감수성에 괜히 도전장을 내어본 것 같아 웃어서 넘겼는데, 문제는 남편뿐만이 아니었다. 집에 밴드 하나 없는 것을 내가 부지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나도 문제인건 마찬가지.

 

앗, 처음 글의 주제는 '우리 집에 왜 내 물건은 없나' 였는데, 왜 '젠더 감수성'으로 넘어간거지?! ㅋㅋㅋㅋㅋㅋ 지금 약간 비몽사몽이라 여기서 마무리. 

 

우리 집엔 없는 게 너무 많아....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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