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

어쩌다 캠핑

어진백작 2021. 9. 27. 01:40

 

동계 캠핑을 준비 중인 남편이다. 세 아이의 갓난쟁이 시절, 지하 땅끝까지 숨겨놨던 자신의 욕망을(그래봤자 캠핑) 슬금슬금 끄집어 올리더니 캠핑 난로를 냅다 지르는 거다. 이제 막내가 지 알아서 다치지 않고 잘 다니니까 저래 용기를 내더라고. 간도 크지. 애 셋을 데리고 동계?!?!? 동~계~에?!?? ㅎㅎㅎㅎ 미쳤다. 미쳤어. 

 

예행연습이나 마찬가지였다. 난로를 가져갈만큼 춥지는 않았지만 어젯밤은 바람이 꽤 불었다. 시시각각 하늘의 구름 모양이 달라지고 낮에도 타프 밑에 앉아만 있으면 땀은 맺히지 않았다. (열심히 캠장들을 정리하는 남편은 땀으로 샤워;;;) 오후 내내 잔디밭을 뛰어 놀던 아이들을 9시 땡하자 마자 억지로 재웠다. 밖은 시끄러운데 잠이 오나 어디. 그치만 아이들도 피곤했었는지 30분도 안돼 곯아떨어졌다. 

 

밖에서 테이블을 정리하고 불멍을 즐기고 있는 남편 옆으로 가 앉았다.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질만큼 많더라. 달도 밝고 이래저래 그 모습이 좋아서 계속 하늘만 봤던 것 같다. 여긴 잔디밭이 너무 넓어서 사이트가 50여개쯤 되는 듯 했다. 우리가 마지막 남은 하나를 잡은게 46번이었는데, 주차장 길목에 있어서 차들이 많이 다닌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불멍을 즐기기에 자리 따윈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기분 좋은 바람, 적당히 쌀쌀한 공기, 바람 때문에 활활 잘도 타오르는 참나무 장작, 뻥하고 뚫린 하늘 위론 온갖 별자리가 다 보이고, 구름도 달도 내가 가을을 데려왔다며 자랑하듯 근사하게 포즈를 취했다. 

 

아이들과의 캠핑은 단 두가지의 목적이 있다. 1. 어차피 뛸 거,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아라. 2. 너희들이 잠들고 에티켓을 지킬 수 있는 시간까지의 불멍+맥주의 낭만. 보통 2번은 길어봤자 2시간이 전부지만 이것 때문에 간다. 진짜. 

 

 

아이들은 금새 친구들을 사귀어 와서 함께 논다. 코로나라 걱정이 됐지만 뜯어 말릴 수 있는 분위기는 안됐다. 다른 집들 눈치도 있고. 넓은 잔디밭으로 유명한 산청경호강그린캠프. 아이들이 뛰어놀기엔 정말 딱인 곳이다. 불앞에서 우린 고구마를 구워먹었다. 밤고구마가 사탕보다 달달했던 건 분명 기분탓이었을 거다. 

 

우리가 과연 동계 캠핑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의문이 든다. 파카를 입고 자도 발끝이 시릴텐데, 난로만으로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수면 잠옷에 수면 양말까지 준비해야 할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짐을 싸고 풀것인지 ㅋㅋㅋ 그래도 좋다면 할 수 없지. 너희들이 좋다면, 남편이 좋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