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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는 했는데 ep.1

어진백작 2021. 5. 9. 00:09

새 집 바닥에 신문지가 웬 말이냐!
선명한 너의 자국

 

인테리어 견적 낼 때 어떤 사장님의 얘기가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집 계약을 했으요?" 

 

평생 건설업에 종사하셨고, 현재도 설비쪽 일을 하고 계시는 이 분의 철칙은 단 한 가지.

 

"물 새는 집은 사는 게 아니다"

 

정확히 5.2354초 간격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울려 퍼진다. 이틀 전에 내린 비가, 아니 시멘트에 스며든 비가 아직도 떨어지고 있다. 탑층이 아니라면 더 간단했을 거다. 아랫집에 물이 새면 윗집에서 해결해주는게 당연한 관례니까. 요즘엔 보험도 다 들어놔서 일사천리로 보상까지 해결된다. 그런데, 탑층의 주인이 되고는 '잘 싸워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허참. 왜?! 관리사무소에서 처리해주면 되는데?!?!?!?!? 결국,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 

 

이 아파트는 A방수업체와 5년에 걸친 계약을 했다. 지금이 2년 째라 앞으로도 3년은 좋든 싫든 이 업체와 해결을 해야 한다. 관리소는 남은 계약 기간동안은 하자 보수도 A업체에서만 할 수 있다고 했고, 아파트 장기수선충당금으로 해결하면 감사에서 걸린다는 이유로 발뺌했다. 알고보니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늘 이런 식(적극적인 처리가 아닌, 업체로 떠넘기기)의 하자 보수 처리로 이미 소문이 나있었다. 

 

그렇다면, A 방수 업체와의 소통은 쉬웠느냐. 개뿔. 누수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는 집 상황도 살펴보지 않고 1차(2차 누수가 있었음을 암시) 방수 처리를 했다. 그리고 관리소 측을 통해 소식을 전했다. 나 같으면 들어와서 집 상태를 보는 척이라도 하겠다. 그게 정석 아닌가? 1차 방수 처리 이후 다행이도 이틀정도 지나 제법 비가 내렸고, 궁금했던 우리는 아직 이사도 안한 집을 방문했는데 헐! 뚝뚝뚝.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제대로 사실을 말한다. '부분' 방수처리를 했단다.(이것도 관리소 측을 통해 들은 내용이다. 나는 이 부분이 너무 어이가 없다) 어디에서 새는 지 상황 파악도 제대로 안하고 부분 방수라니????? 어쩜 이렇게 일처리는 하지? 기가 차고 코가 차서. 부분 방수처리 실토 이후에도 얼굴 하나 비추지 않던 업체는 또 소리소문 없이 2차 작업을 하고 갔다. 이것도 관리소장을 며칠동안 다그쳐서 알아낸 사실이다. (왜 그런 과정을 다그쳐야만 얘기를 하는가?!) 이번엔 전체 방수를 했으니 누수가 잡힐거라고 굉장히 으시대는 듯 말을 했다.  

 

인테리어 공사는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누수된 천장 자리는 뜯어놨지. 비가 와야 확인이라도 할 텐데, 이삿날까지 비는 커녕 쨍한 날씨가 계속 이어졌다. 결국 이삿날짜가 다가왔고, 그렇게 천장 한쪽은 마감이 되지 않은 채 짐을 들였다. 새 집인데, 새 집 아닌, 새 집 같은 너....

 

이사를 하고 인테리어 공사도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이것은 다른 에피소드에서 밝히겠다) 짐 정리가 너무 막막해서 거의 넋 놓고 하루 이틀 보내고 있는데, 어맛?! 비가 온다. 어라?! 제법 많이 온다. 전체 방수를 해놨으니 이번에는 잡혔겠지. 하고 일찍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기도 전에 남편이 말했다. 

 

"물이 또 새더라. 다 찍어놨어. 이제 당신이 갑이야. 널을 뛰어도 돼."

 

한국인은 왜 신사답게 일처리를 못하는가. 왜 '지랄'을 해야 움직이는가. 연구대상감이다. 화를 내지 않고 좋게 대화로 풀려고 하면 자기 아래로 얕잡아보고 설렁설렁. 야하~ 좋다. 그래. 지랄을 해주마. 아주 제대로 미친년이 되어 주지. 2차 방수 처리하고 아주 의기양양했다 이거지? 너네 어떻게 나오는지 내가 딱 두고 볼거야. 

 

원래 누수 잡기는 힘든 법이다. 뭣도 모르는 나도 아는 상식이다. 어떻게든 잡아주면 된다. 기다릴 수 있다 이거다. 근데 하는 꼬라지가 엉망이니 화가 나는 거다. 내가 무슨 여왕대접을 바란 것도 아니고, 내 앞에 넙죽 엎드려서 사죄를 원한 것도 아니다. 단지 얼굴을 마주하고 작업을 두 번이나 했는데도 비가 새는지 상세히 설명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를 말하란 말이다. 처음 누수 신고를 받고서 그랬어야 했다. 한 달이 넘도록 나 혼자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 게 너무 괘씸해서, 정말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분노했던 지난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침작하게 관리소장에게 전화를 했고, 그제야 면목이 없다며 방수업체 관계자와 집을 방문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근데 그 날은 안된데. 일정이 있어서 안된데. 하루 더 기다리고 만난 방수업체 관계자. 아주 귀한 걸음 하셨다 그래. 

 

타이어에 빵꾸가 나면 주입하는 소시지, 인젝션 공법으로 막으면 1, 2백만원이면 끝낼 수도 있는데, 두 번의 작업으로도 잡히지 않으니 (솔직한 바로는 자기네 업체 명성에 금이 갈 지경이니) 지붕을 다 뜯어서 크랙을 살펴보겠다고 한다. 나는 인젝션 작업을 하면 물길이 바뀔 수가 있어서 위험하다고 말했고 이미 그쪽에 신뢰를 잃었으니 말씀하신 공정에도 누수가 잡히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서 차후 대책까지 약속하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은 녹음을 했다. 

 

다음 작업은 비소식이 있는 수요일 이후에 진행될 예정이다. 나와 남편은 장마기까지 안잡힐 거라 보고 있다. 어떻게든 누수를 잡는 것이 중요하므로 그 때까지 마음을 좀 놓고 기다리기로 했다. 천장 마감이 되지 않은 곳 아래에는 가족 테이블을 만들어 아이들이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여러가지 놀이를 하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가을 쯤 완성이 되려나 모르겠다. 

 

 

나는 원래 '화'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났다고 할지언정, 반나절이면 금새 풀어지는 아주 태평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이사를 경험하고는 많이 달라졌다. 화도 많고 신경질이 자주 나서 그런 내가 적응이 안 될 정도다. 빨리 평온한 마음을 찾고 싶다. 새로 만들어진 서재, 내 책상에 앉아 마음놓고 글을 쓰고 싶다.....  제발.